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활발히 책 추천을 해왔다. 지난해 5월 퇴임 후 추천한 책만 10여권이 넘는다. 여권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현실 정치에 관여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로 읽는 반면, 출판계에서는 시장 확대 측면에서 일단 긍정적 반응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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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책은 먹힌다. 대통령의 독서 리스트는 국정 운영 철학이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다. 때문에 대통령의 독서는 곧잘 고도의 정치 행위로 해석되기도 한다. 문 전 대통령이 2월~3월께 책방을 연다는 소식을 내놓자, 여권에선 곧장 견제구를 날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잊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며 “사실상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하려는 의도다. 친문진영의 정치적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독서 목록을 처음 공개한 건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다. ‘지식자본주의혁명’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맹자’ ‘미래와의 대화’ ‘비전 2010 한국경제’ 같은 책 목록을 공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독서광이었다면, 독서정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에게 책은 국정철학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재임 중 공식석상에서 50여권의 책을 추천했다. 그중 몇몇 저자는 청와대 요직에 중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독서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는다. 인위적 쇼처럼 비칠 수 있다는 주위의 만류 때문이다. 대선 후보 시절 추천한 책 3권이 전부다. 대선 기간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각 후보에게 추천 책을 묻자, 당시 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밀턴 프리드먼이 쓴 ‘선택할 자유’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꼽았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취임 100일 당시에 국민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받아 580권으로 대통령의 서재를 꾸민 일화는 유명하다.
출판계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오바마 전 대통령도 매년 꾸준히 책 추천을 하며 출판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며 “서점을 통해 소통하겠다는 문 전 대통령의 출판계 애정이 엿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동네서점 측도 “문 전 대통령의 추천 책은 단숨에 관심을 받는다. 출판사에서는 문 전 대통령의 추천을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출판계도 발 빠르게 대응한다. 문 전 대통령의 선택을 받으면 ‘추천 책’ 띠지를 입혀 다시 내놓는가 하면, 서점가에선 ‘문재인대통령이 읽은 책’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역대 추천책까지 묶어 홍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력 정치인의 책 선정은 정치적 맥락 개입의 여지가 있을 수 있고,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탄탄한 대형 출판사 콘텐츠에 추천이 쏠리면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질 것이란 반론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출판계에 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부 유명 인사가 베스트셀러 지형을 좌우하는 상황이 출판계 종사자들의 사기 저하는 물론 책의 양극화는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