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제국을 무너뜨린 '지록위마'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 등록 2024-06-03 오전 6:15:00

    수정 2024-06-03 오전 6:15:00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서로 다른 지식과 기술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초연결사회’에서는 상호협력을 이끄는 ‘신뢰’가 국가경쟁력의 근간이다. 다양한 기술과 기술, 의견과 의견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면 신뢰 기반 구축이 절대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지도층 인사들일수록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바꾸고 이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의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는 패배주의에 물들고 있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협력하는 질서보다는 그때그때 거짓말 창작이나 실권자의 변덕에 따라 사회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보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토론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나라의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다.

신뢰를 쌓으려면 당장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는 점점 높아진다. 신뢰를 저버리고 눈앞의 이익을 챙기면 일시적으로 조그만 이익을 얻을지 모르나 결국에는 인심이 외면하여 커다란 비용을 치르고도 회복하기 어렵다. 조금 멀리 보면 신뢰는 크게 수지맞고, 불신은 아예 밑지는 장사라고 단언할 수 있다. 서로 믿고 의지하지 못하는 조직이나 사회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워 멀리 가지 못하는 세상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과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서 “국가의 흥망성쇠는 백성들의 신뢰를 얼마만큼 얻느냐에 달려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서로 속이고 속는 혼탁한 모습을 보이던 전국시대 BC359년 진나라 진효공(진시황의 5대조)의 신임을 받은 상앙은 개혁을 주도하였다. 상앙은 백성들이 믿고 따르지 않으면 어떠한 개혁도 물거품이 된다는 세상 이치를 꿰뚫고 있었기에 나라에서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새 법령을 공포해 왕족부터 모범을 보이게 하고 누구나 예외 없이 지키게 했다.

상앙은 남문 앞 저자에 3장(丈) 크기의 나무를 세워 놓고 북문으로 옮기는 백성에게 거금 10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다. 서로 의심하던 풍토에서 사람들이 코웃음만 치자, 상금을 50금으로 크게 올렸다. 밑져도 본전이라고 생각한 어느 백성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자마자 큰돈을 상으로 줬다. 백성들의 믿음을 얻으면서 진은 강국이 되어 천하를 통일하는 바탕을 마련했다. 백성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진나라는 점점 부강해져 약 500년간 혼란을 거듭하던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천하 통일을 이룩했다.

진시황이 죽고 희대의 간신 조고가 권력을 거머쥐고 나랏일을 원칙 없이 주무르니 불신풍조가 다시 번졌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던 조고는 신하들 앞에서 2세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우겨 황제를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유래다. 신뢰를 바탕으로 천하를 통일한 그 거대한 제국의 운명은 불신 풍조가 번지면서 순식간에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진 제국의 흥망은 무릇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트리기는 쉽다는 교훈을 후세에 남겼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간지러운 사탕발림 아니면 몰염치한 생떼가 난무하다 보니 일반시민들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헤아리기 어려운 불신과 혼돈의 세계에서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불신을 조장하는 인사들에게서 부끄러운 기색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하기야 우리 역사를 멀리 되돌아볼 때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굳건하게 자리 잡은 시대가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 헤아리기 어려워 절로 안타깝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되는데 신뢰가 없으면 바로 설 수 없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논어 안연7)라고 하였다. 우리가 살면서 고단했거나 편안했던 삶의 흔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지만, 떳떳했거나 부끄럽던 의식의 궤적은 세상이 바뀌어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는다. 생각컨대, 인간으로서 꺼림직한 승리보다 당당한 패배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커가는 사회의 미래는 밝아오고 성장동력은 확충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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