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K- 공모주 제도 민간 자율에 맡겨야

  • 등록 2021-08-20 오전 6:15:00

    수정 2021-08-20 오전 6:15:00

[유재훈 건국대 석좌교수·전 금융위원회 증선위 상임위원] 공모주 청약을 위한 열풍이 거세다. 앞으로 대형 기업공개가 예정되어 있으니 아마도 청약자금 동원과 청약율 면에서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는 뉴스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기억 속에서는 두가지 장면이 겹친다. 첫째는 짐캐리가 주연을 한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 장면. 잠시 신이 된 주인공은 모든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복권 1등당첨의 행운을 준다. 결과는 거액의 당첨금 대신 한사람 앞에 17달러씩의 1등 당첨금이 돌아가게 된다. 두번째 장면은 자본시장이 부분개방에 그치고 기업공개 규모가 크지 않던 90년대 필자가 만난 외국 IB 인사와의 대화. 한국에는 경제규모가 커지면 우량한 기업의 기업공개가 늘어날 텐데 왜 상장기업으로 전환될 때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를 배제하고 개인투자자에게만 청약기회를 주는지 의문이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어렵사리 대한민국의 증권정책은 자본시장의 저변 확대를 위해 많지 않은 공모주라는 인센티브를 개인에게만 주도록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세월이 흘러 개인에게만 청약기회가 주어졌던 기업공개주식 매입제도는 선진증시와 같이 기관들이 먼저 참여하여 가격형성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개편됐고 개인 투자자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청약배정 비율의 조정이 있었다. 또한 공모주 가격이 대부분 시가에 비해 낮게 책정되는 점에 착안, 각종 정책성(?) 공모주 펀드들도 만들어졌다. 개인들이 자금을 융통하면서까지 청약한 주식값이 상장후에 가격이 고꾸라지면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선진증시에는 우리와 같은 공모주 청약제도는 없다. 마치 전국적인 수능시험을 보듯 공모주 청약 일정이 발표되고 이를 위해 거대한 머니 무브가 매번 일어나는 현상이나, 기관들의 수요예측과 발행가격 결정공식, 상장후 주요 주주의 매도제한 등이 발행사와 주관사간의 협의가 아닌 엄격한 감독조치에 의해 지도되는 일 들은 한국적 K-공모주제도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시장은 공시주의 원리를 그 근간으로 한다. 한 회사의 가치나 그 회사에 대한 투자여부는 고도로 훈련된 금융전문가의 심사결과가 아닌 정확한 정보가 주어지는 한 그 회사의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투자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 집단지성을 통해 형성된 가격은 그 회사의 미래가치를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의 공모주청약제도는 발행기업과 투자자 들 간의 이해관계가 시장 원리에 바탕을 두고 당사자간에 조정된다기 보다 지나치게 타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에서의 투자자 보호는 공모주 가격이 상장 후 가격보다 낮아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신규상장기업 중 공모가 대비 상장당일 종가가 상승한 경우는 68%에 달한다. 선진증시에서도 상장후 가격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 증시의 경우 상장후 공모주식가격의 상승확률과 상승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국내 자본시장이 성숙한 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장에 존재하는 인위적인 공짜점심은 없어져야 한다. 공짜점심은 한편으로는 기업공개기업 주주의 희생을 초래하고 또 한편으로는 공짜점심 기회를 차지하기 위한 투자자들간 형평성 논란을 부른다. 특히 형평성 논란의 위험은 공모주 제도운영의 탄력성을 잃게 하고 감독당국의 개입을 부르는 단초가 된다. 그리하여 자본시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업공개 제도의 타율화는 완성된다.

혹시 이러한 공짜점심의 보호가 투자자 보호로 둔갑한다면 더욱 우려할 일이다. 진정한 투자자 보호는 앞서 말한 공시주의의 엄격한 집행, 증권범죄에 대한 사후적인 조사와 처벌강화로 지켜낼 일이다. 그것이 자본시장에서의 투자자 보호의 요체다.

대한민국의 실물경제는 명실상부한 G10 수준을 구가하지만 자본시장은 그 참가자들이 스스로 자율성을 반납하고 개발도상국의 패러다임에 안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우리 자본시장은 구조적 성숙기를 맞이하고 있다. 공모주 청약 때 마다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는 K-공모주 제도도 자본시장의 기본 원리에 따라 민간 자율에 맡길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전세계의 주식에 24시간 투자하는 선진국형 투자자로 진화하고 있지 않은가.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미모가 더 빛나
  • 빠빠 빨간맛~♬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홈런 신기록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