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株소설]'노매드랜드’ 주인공이 다시 아마존을 찾은 이유

국내 '아마존 효과', 연평균 근원인플레 0.2%p↓·취업자 1.6만명↓
배민라이더 약 1년새 5배, 쿠팡맨 8개월 만에 12배 증가
작년 '초저임금' 일자리 0.5%p↑로 통계 조사후 첫 증가
"'혁신'이 '쿠팡맨' 계속 늘리는 슬픈 사회 현실"
  • 등록 2021-04-29 오전 6:30:00

    수정 2021-04-29 오전 6:30:00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제93회 아카데미 3관왕(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노매드랜드’는 집 없이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미국 사람들을 다룬 영화입니다.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은 영화 초반 아마존(AMZN) 물류센터에서 초단기 아르바이트로 일합니다. 이후 펀은 다른 지역으로 터전을 옮겨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으려 노력하지만, 녹록지 않습니다. 결국 주머니가 얇아진 펀은 다시 아마존 물류센터로 돌아옵니다. 감독은 왜 하필 아마존이란 기업을 출연시켰을까요. 어쩌면 ‘4차 산업 혁명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이 나온 한 장면. (출처=AP통신)
디플레 압력 넣고 고용 축소하는 ‘아마존 효과’

‘아마존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온라인쇼핑의 발달이 물가상승을 제한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도래하긴 어렵다는 주장의 한 근거로도 쓰입니다. 아마존은 혁신적인 풀필먼트(FBA·Fulfillment By Amazon) 서비스 등을 통해 중간 유통 단계를 줄여 물건의 가격을 낮추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올 초 항공화물 운영을 위해 항공기 11대를 구매했습니다. 그간 항공기를 임대해 사용했지만 구매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제는 무역 마진 구조마저 파괴하겠다는 것으로 소비자 물가는 더 하락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존 효과는 물가를 누를 뿐 아니라 고용도 축소합니다. 아마존이 하도 가격을 후려쳐 놓기 때문에, 경쟁사들은 물건값을 올리기는커녕 울며 겨자 먹기로 내려야 합니다. 순수익은 줄게 되고 이 과정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 감축이 일어납니다. 심하면 회사가 문을 닫고 일시에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습니다.

아마존 효과는 국내에서도 실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지난 2018년 한국은행 조사국이 낸 ‘온라인거래 확대의 파급효과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14~2017년 온라인 상품판매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할 때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연평균 0.2%포인트(온라인 상품판매 비중 확대 고려) 하락한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같은 기간 온라인거래 확대에 따른 오프라인 판매 대체효과로 도소매업 부문의 취업자 수는 연평균 약 1만6000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아마존이 ‘자른’ 노동자, 아마존으로 흡수되는 아이러니

아이러니한 것은 아마존 효과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아마존으로 유입되고 있단 점입니다. 일자리의 질은 낮아졌을 걸로 보입니다. 혁신 기업은 정규직보단 초저임금, 초단기 임시직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은 일감이 몰리는 연말에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캠퍼포스(CamperForc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단기 라이더 서비스 ‘배민커넥트’ 가입자는 지난 3월 기준 약 5만명입니다. 2019년 말 기준 약 1만명에서 5배 증가한 수준입니다. 아이지에이억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리어 전용 앱 ‘쿠팡이츠 배달파트너’의 월간이용자수(MAU)는 지난해 5월 3만8000명에서 올 1월 48만명으로 8개월 만에 12배 이상 늘었습니다.

비슷한 기간 임금 100만원 미만의 ‘초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사상 처음 상승했고, 반면 월급 100만~200만원의 ‘저임금’ 일자리는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통계청이 취업자의 산업·직업별 특성을 주제로 실시한 ‘2020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중에, 월 임금 100만원 미만 비중은 10.6%로 1년 전보다 0.5%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증가는 지난해가 처음이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모든 임금 대에서 근로자는 줄었습니다. 특히 월 임금 100만~200만원 비중 하락률은 더 컸습니다. 21.9%로 전년 대비 1.2%포인트 감소했습니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이 크겠지만, 기술 혁신이 노동자들을 초저임금 일자리로 밀어 넣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지난 3월 11일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번쩍배달 수입감소·위험증가 배달의민족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초저임금 일자리 증가, 가격 낮추는 쿠팡이 살 수 있는 동력”

이는 혁신 기업이 마진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마진을 줄여 제품 가격을 계속 낮추지만, 초저임금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느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널리고 널린 게 라이더들인데 임금을 굳이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비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수익률 제고로 연결됩니다. 현실은 더 가혹합니다. 쿠팡이츠는 지난 3월 2일부터 라이더 기본 수수료를 3100원에서 2500원으로 20% 낮췄습니다. 봄이 찾아와 외식 수요가 늘며 배달 주문이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초저임금 수준이 낮아지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다행인 것입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폭력적으로 가격 파괴를 하고 있음에도 어떻게 기업이 유지될 수 있느냐는,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계속 돈을 풀어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등장했고 이는 주식시장에서 기술성장 기업이 자금을 계속 흡수하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며 “또 한 가지는 혁신이 야기한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가 앞으로 계속해서 ‘쿠팡맨’을 늘릴 거란 점으로, 사실 슬픈 사회적 현실이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아마존 주가 실적 발표 앞두고 우상향

노매드랜드 원작인 ‘노매드랜드: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 에세이는 아마존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영화가 아마존 문제를 깊게 다루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기도 합니다. 다만 영화가 아마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내용을 분명하게 그렸다는 점에선 비판적 시선이 녹아 있다고 보입니다. 아마존의 초저임금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가 끊이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어서입니다.

한편 최근 아마존 주가는 실적 발표를 앞두고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27일(현지시간) 기준으로 이번주 약 2.3% 올랐습니다. 지난 26일 찰스 가스파리노(Charles Gasparion) 폭스 비즈니스 기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주식 트레이더들은 아마존이 이르면 이번 실적 발표에서 액면분할을 발표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한 영향도 있습니다. 아마존의 실적 발표는 오는 29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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