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에서는 “말조심하라”며 반격이 쏟아진다. 일왕이 일본 사회에서 상징적인 존재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위안부 책임론까지 새로 거론됐다는 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례한 발언”이라는 날선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특히 아키히토 일왕이 오는 4월 말로 퇴위를 앞두고 있는 마당이다. 올해 여든여섯 나이인 그에게 연민의 감정이 한껏 쏠린 상황에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키히토가 직접 사과할 경우 위안부 문제가 과연 일거에 해결될 수 있을까.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아무리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고 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 법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전적인 형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더구나 한창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끌려가 만신창이 신세가 된 할머니들이다. 그 누가 몇 마디로 사과한다고 해서 가슴에 겹겹이 맺힌 한이 풀릴 수 있겠는가.
사과는 분명히 받아내야 하지만 일본 측은 이미 할 일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 때 이뤄진 위안부 합의의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내세운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다소 애매한 편이다. 합의가 잘못됐다고 하면서도 정작 파기를 선언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의 출연으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절차만 밟고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유부단하게 끌고갈 게 아니라 차라리 합의를 파기하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어정쩡한 상태로는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 불행했던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상반된 위치에서 서로 수긍할 만한 타협점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마냥 변죽만 울리면서 마찰을 확대 재생산하는 지금 모습보다 더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입장이 당당하기만 하다면 국가 간의 약속을 뒤집었다는 비난도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정치 지도자들도 원점으로 돌아가 양국의 바람직한 미래관계를 생각하기 바란다. 각자의 발언에서부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본 지도자들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 가능하다면 서로 밀사를 파견해 물밑에서라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기 바란다.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갈등만 확대될 뿐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