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원작자 연상호 "계급사회 비극 현재진행형, 거대하고 복잡" [인터뷰]

드라마는 '가해자는 어떻게 살고 있나'에 대한 답
황경민, 정종석 모두 뒤틀린 캐릭터라 맘에 들어
드라마 보며 어린시절 기억도…매우 흡족한 결과물
드라마 속 모든 인물, 피해자-가해자로 나눌 수 없어
  • 등록 2022-03-29 오후 3:13:02

    수정 2022-03-29 오후 3:13:02

‘돼지의 왕’ 원작자 연상호 감독. (사진=티빙)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처음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만들었을 때 관객들에게 ‘그 시절 가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란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드라마 ‘돼지의 왕’은 11년 전 관객들이 품었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상호 감독이 원작 애니메이션 개봉 후 11년 만에 드라마로 새롭게 재탄생한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을 접해 느낀 차별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티빙 ‘돼지의 왕’은 2011년 연상호 감독이 만든 동명의 원작 장편 애니메이션 세계관을 각색해 만든 드라마다. 원작은 중학교란 작은 사회에서 발생한 폭력을 소재로, 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를 ‘개’로, 이에 굴복하는 약자들을 ‘돼지’로 상징해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돼지들이 느끼는 열등의식과 비굴함, 폭력에 저항하며 ‘돼지들의 왕’이 되려는 이들의 고군분투와 절망, 부조리를 현실적으로 다뤄 평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드라마는 이 원작 세계관에서 한 발 짝 더 나아갔다. 원작에는 상세히 조명되지 않았던 가해자가 피해자고, 피해자가 가해자이기도 한 혼란스러운 세상과 어린 시절 폭력의 기억을 안고 자라난 어른들의 이후 이야기들을 그려냈다. 김동욱, 김성규, 채정안이 주연으로 이번 주말 5, 6화 공개를 앞두고 있다.

드라마를 집필한 탁재영 작가와 원작자 연상호 감독은 29일 화상인터뷰를 통해 ‘돼지의 왕’이 공개된 후 쏟아지는 대중의 반응에 대한 소감과 원작과는 다른 드라마의 차별화된 매력 포인트들을 직접 전했다.

연상호 감독은 “원작이 세상에 나온지 어느덧 11년이나 지났다”며 “새로운 내용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돼 감격스러운 마음이다. 드라마를 잘 구현해주신 작가님과 제작진, 배우들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드라마가 공개된 소감을 전했다.

그는 먼저 원작 ‘돼지의 왕’을 만들었을 당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언급했다. 연 감독은 “‘돼지의 왕’은 제가 처음 집필한 장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였다”며 “한국 계급사회가 가진 비극을 ‘학교’란 배경과 아이들이란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드라마화된 ‘돼지의 왕’이 지닌 매력에 대해선 “초반엔 황경민(김동욱 분)의 복수극이 주가 돼 가해자와 피해자가 극명히 나뉘어 보이나, 회를 거듭할수록 인물들이 가했던 폭력이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라며 “복수의 칼날의 끝이 마침내 어디를 향할지 계속 지켜보시면 원작의 비극을 더욱 효과적으로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1, 2화 제작과정에선 자신이 함께 참여했지만 그 이후 집필 제작 과정에선 전혀 관여를 안했다고도 덧붙였다. 자신 역시 결과물이 궁금했는데 너무 재미있게 잘 나와 탁 작가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도 전했다.

원작과 드라마의 또 다른 차이점은 ‘주체’다. 연 감독은 “원작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주가 되며, 그것을 회상하는 어른들의 대화로 스토리가 구성됐다”며 “드라마화가 성공하기 위해선 원작 이상의 강력한 장르적 장치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어린 시절 기억을 안고 자란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었다. 연 감독은 “어른들의 이야기에 복수극, 연쇄살인을 덧붙이면 적합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황경민, 정종석(김성규 분) 뿐 아니라 어린 시절 이들의 가해에 가담했던 가해 등장인물들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일 것이라고도 귀띔했다.

드라마로 재탄생한 황경민과 정종석 캐릭터를 향한 만족감도 드러냈다. 연상호 감독은 “두 사람 모두 겉으로 잔잔해보여도 내면이 뒤틀려있는 인물이라 마음에 들었다”며 “정종석은 엘리트 형사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연쇄살인마 황경민을 잡으려는 목적에 의심이 들 것이다. 황경민을 구원하기 위해 잡는 게 아닌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뒤틀린 남성성이 갖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며 “이를 원작엔 없는 강진아(채정안 분) 캐릭터를 통해 관객이 목도할 수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를 보면 새삼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보기도 했다고도 털어놨다. 연 감독은 “학교는 아이들이 처음 대하는 세상이자 유일한 사회”라며 “나 역시 어릴 적 그리 잘난 사람이 아니었고, 이를 학교에 간 순간 깨달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돼지다, 숙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깨우쳤다. 그 세상에서 느낀 제 감정도 여러 가지였다”고 고백했다.

원작 ‘돼지의 왕’이 세상에 나온 뒤 11년이나 지났지만, 사회의 비극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전했다.

“사회도 나아질 의지를 가져야 변할 수가 있는데 아직까진 변해야겠다는 의지를 온전히 느끼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돼지의 왕’이 가진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현실에서 현재진행형이며, 어쩌면 더 작품보다 더 거대하고 복잡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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