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규제혁파②]외손녀 남편회사 수백만원 투자에 檢 끌려갈 뻔한 신격호 회장

1987년 만든 시대착오적 대기업 규제 특수관계인 제도
"규제 개선한다더니 울타리 색깔만 바꾼채 유지" 지적도
재계 "친족 범위 경제적 이해를 같이 하는 자로 한정해야"
  • 등록 2021-01-04 오전 5:00:00

    수정 2021-01-04 오전 8:55:53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롯데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그룹 총수로 있었던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대상에 올랐다. 외손녀가 깜박하고 보유 주식 신고를 일부 누락한 탓에 특수관계인 지분 불성실 신고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할 상황에 처했다.

신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호텔롯데 전무가 남편이 운영하는 GF솔라, 그린리빙, C솔라 등 3개사에 투자하고도 공정위에 신고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롯데그룹이 장 전무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비상장사 지분까지 파악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공정위 사무처(검찰 격)는 장 전무의 신고 누락은 고의성이 짙다며 신 명예회장과 장 전무을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정위는 신 명예회장이 지난해 1월 작고하자 장 전무가 투자한 지분이 수백만원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해 경고조치로 해당 사건을 종결했다.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는 공정거래위원회 본부


1987년 만든 시대착오적 대기업 규제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규제는 동일인(총수) 지정이 시작점이다.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동일인으로 지정한 뒤 이를 중심으로 혈족 6촌, 인척 4촌 이내를 특수관계인으로 정하고, 이들이 보유한 주식, 운영하는 회사와 대기업집단과 주요 상품·용역 거래 등을 공정위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동일인의 확인을 거쳐 자료를 제출하기 때문에 허위 자료가 있다면 동일인도 자칫하면 고발 대상이 된다. 동일인에게 부과하는 벌금은 최대 1억원이지만 공정위 조사, 검찰 수사에 시달리다 보면 이미지 타격은 물론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동일인 제도는 특정 기업 집단이 문어발식 확장을 통한 선단식 경영으로 경제력을 집중하면서 발생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1987년 4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도입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으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하청업체로 전락하거나 도태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조치다.

하지만 산업구조 등 경제 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동일인 규제가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규제로 전락했다는지적이 나온다. 경영계에서는 헌법에서 규정한 경제력 집중 억제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변화된 상황에 맞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공정위 대기업 집단 규제는 기존 재벌과 다른 형태의 지배구조를 가진 네이버, 카카오 등 IT 대기업의 등장 등으로 ‘녹슨 칼’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이들 IT기업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은 과거 대기업집단과 달리 총수 중심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친족들이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친족회사 밀어주기, 자녀의 기업승계 문제 등도 없다.

하지만 공정위는 지난해 2월 과거 규제를 그대로 적용해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검찰에 고발했다.

GIO가 100% 지분을 보유한 경영컨설팅사 지음과, 친족이 보유하고 있는 음식점업체 ㈜화음 등에 대한 신고를 고의로 누락한 혐의다.

화음은 이 GIO의 사촌인 이해경 씨가 지분 50%를 보유한 회사로 인천국제공항에 입주해 있는 외식업체로 네이버 그룹과 아무 거래도 없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 GIO가 네이버 기업집단 ‘동일인’ 지정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보고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검찰은 ‘고의성’이 없다며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IT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부터 이사회 운영까지 기존 재벌과 완전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지만, 공정위에서는 매번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면서 “고의성이 없더라도 직원이 자칫 실수를 해 조사를 받을 경우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기존 대기업도 매년 특수관계인에 대한 신고의무로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가족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져 형제간에도 서로 연락을 안하는데 4촌이나 6촌이 어느 기업 지분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가능하겠냐”고 토로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규제 개선 한다더니 울타리 색깔만 바꾼채 유지

공정위도 이같은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 고의성,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서 제재 경중을 따질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직원 실수 등일 경우에는 경고조치만 하도록 제재 기준을 정한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불문에 부치거나 검찰 고발만 가능했다”며 “이제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경고 처분만 하는 등 다양한 제재수단이 마련된 만큼 과잉규제 논란을 불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친족간에 연락이 두절된 경우에는 사전에 고지할 경우 정상참작해 제재수위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로는 기업들이 체감하는 규제 민감도를 낮추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다 과감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공정위 안팎에서 나온다.

대기업집단 업무를 했던 전직 공정위 고위 간부는 “공정위가 울타리의 색깔만 계속 바꿀 게 아니라, 경제력집중을 보다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 때가 됐다”면서 “상법 개정으로 주주들의 견제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공정위 대기업집단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을 어떤 식으로 바꿀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형제자매, 직계 존비속 간에도 경제적 이해관계가 달라서 재산권 분쟁이 종종 발생하는 현실에서 6촌, 4촌을 경제적 동일체로 간주하고 규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면서 “특수관계인 가운데 친족의 범위를 동일인의 배우자·직계 존비속 또는 4촌 이내의 혈족, 인척 중에서 ‘경제적 이해를 같이 하는 자’로 한정하는 방안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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