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식수, 그 오래된 고민 [물에 관한 알쓸신잡]

삼투 현상과 역삼투 현상
  • 등록 2022-03-19 오전 11:30:30

    수정 2022-03-19 오전 11:30:30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1492년 8월 3일 스페인 팔로스 항구를 출발한 콜럼버스는 71일 만에 중남미에 있는 바하마 섬에 도착합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개척의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무도 몰랐던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았던 신항로를 발견했다는 것이 적절할 듯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있었고 원주민 입장에서 콜럼버스는 단지 이방인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재미있는 사실은 콜럼버스도 죽을 때까지 자기가 도착한 곳이 신대륙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유럽에서 대서양을 가로 질러 가면 아시아의 인도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자기가 도착한 중남미의 바하마 근처를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해 서인도 제도라고 이름 붙였고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도 인도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인디언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콜럼버스 이전의 항로는 바다를 횡단하지 않고 육지 주변을 따라가는 항로였습니다. 바다를 가로질러 가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긴 항해에 필요한 음식과 물을 육지에서 공급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음식을 장기간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당시로는 음식과 식수를 조달하는 것이 긴 항해의 관건이었습니다. 음식은 소금에 절이는 방법으로 부패를 방지할 수 있었지만 물은 오염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물에 술을 타는 것이었습니다. 대항해 시대와 해적들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면 선원들은 늘 술에 찌들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당시 선상의 여건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고 항해 시간이 길어지면서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바로 바닷물을 이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바닷물을 끓이는 증류법으로 식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식수를 얻기 위한 증류장치를 배에 싣고 다닌 것은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입니다.

물을 끓여서 식수를 만드는 증류법은 아주 오래된 방식이지만 엔진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선박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증류법은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고 다시 응축시켜 물을 만들기 때문에 장치의 부피가 크고 식수를 만들어내는 속도가 느리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크기가 작으면서도 효율성이 높은 장치를 찾게 됐는데 바로 역삼투 방식을 이용한 것입니다.

삼투 현상. (이미지=최종수 박사)


역삼투 현상은 삼투 현상의 반대라는 의미인데 삼투 현상을 이해하면 역삼투 현상도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삼투 현상이 단어는 생소하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배추를 소금물에 넣어 절이는 것입니다. 배추를 소금물에 넣으면 빳빳하던 배추가 숨이 죽는데 이것은 배추 속에 있는 물이 배추의 반투과성막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배추를 절이는 과정으로 삼투 현상을 설명하면 일정 크기의 기공을 갖는 반투과성막을 통해 물에 녹아 있는 물질은 통과하지 않고 물만 통과하는 현상입니다.

반투과성막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맹물과 소금물을 두면 소금 입자는 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물 분자만 막을 통과하기 때문에 맹물 쪽에 있던 물 분자가 소금물 쪽으로 이동해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소금물의 양이 늘어납니다. 소금물 쪽의 수위가 올라가 맹물 쪽과는 압력 차이가 생기는데 이 압력을 삼투압이라고 합니다.

소금물 쪽에 삼투압 이상으로 압력을 높여주면 물 분자는 어떻게 움직일까요? 맹물 쪽에 있던 물 분자는 반투과성막을 통해 소금물 쪽으로 이동하려고 하지만 소금물 쪽의 압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 막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소금물 쪽에 있는 물 분자가 강한 압력 때문에 반투과성막을 통해 맹물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배추를 절이는 삼투 현상의 반대인 역삼투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이 현상을 이용하면 바닷물에서 식수를 뽑아낼 수 있고 응용하면 물에 있는 오염물질을 걸러내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역삼투 방식의 정수기 원리입니다.

역삼투 방식의 정수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100만분의 1 수준인 0.0001μm의 아주 작은 기공을 통해 물속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이물질을 걸러낼 수 있습니다.

모든 이물질을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은 역삼투 방식의 장점이지만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아주 깨끗한 물을 만들어 내지만 우리 몸에 필요한 칼슘, 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마저 제거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기공을 통해 물을 여과하기 때문에 여과되는 물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이 버려지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역삼투 방식의 정수기가 탁월한 여과능력으로 아주 깨끗한 물을 만들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깨끗함이 지나쳐 우리가 물을 통해 챙겨야 할 건강마저 걸러낼 수 있습니다.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깨끗함도 지나치면 흠이 될 듯합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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