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과 야당 의원들 모두 애써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모습이었지만 표정에서만큼은 ‘화났지만 참는다’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서로 간의 안 좋은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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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날(30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문제 삼은 것은 원 장관의 비공개 발언이었습니다. 8월 24일 한 보수성향 포럼 연사로 가서 여당과 정부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낸 것인데요, 국무위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고 야당 의원들은 주장했습니다.
이 때 원 장관은 “몇 달 앞으로 다가온 국가적인 또 한 번의 재편, 이때 우리가 다른 건 모두 제쳐놓고 모두가 힘을 합해 한 단계 정권 교체의 강화, 이것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총선을 염두에 두고 지지세력이 결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상임위에서 이를 꺼냈습니다.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장관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 선언까지 요구한 것입니다. 원 장관의 발언과 그 취지에 대해서는 선거법 등 법률상 다퉈볼 여지가 있지만, 국회 상임위에서 정치인에게 선언까지 요구한 것은 다소 무리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원 장관도 지지 않고 응수했는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꺼낸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국회 탄핵 의결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지 않았던 사례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 보통의 장관이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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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의원이 “국방부 장관이 출장 간 상황에서 총리가 책임있는 대답을 해야 한다”고 하자 한 총리는 “그러면 도망은 아니라고 이해한 것이냐?”라고 응수했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출장을 놓고 야당 의원들이 “도주했다”고 비꼰 것을 또 비꼰 것이죠. 한 총리는 그간 섭섭했는지 “국무위원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설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병대 채 상병의 사망 사건 수사를 놓고 ‘은폐냐’, ‘아니다’를 놓고 설전을 벌였습니다.
기 의원이 한 총리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정부의 귀책 사유를 나열하자 한 총리가 끼어듭니다. “의원님은 의원님의 주장만 할 뿐 저는 하나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의원님이 하는 얘기는 다 틀렸습니다. 하나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해석입니다.”
야당 의원들이 큰 소리치고, 여당 의원들은 이를 만류하고, 국무위원들은 시간만 지나길 바라는 과거 국회 질의에 익숙해서일까요? 최근의 국회 질의 상황을 보면서 ‘뉴노멀’을 느낍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일까? 정치인 국무위원들이 과거보다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일까?
물론 과거 정부에 이 같은 ‘뉴노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문재인 정부 때 법무부 장관 때입니다. 추미애, 박범계 현역 의원들이 법무부 장관 등이 당시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을 때죠. 그때도 야당 의원들은 국무위원의 응답 자세를 지적했습니다. 공수가 바뀌었을 뿐 주고받는 설전의 모습은 비슷합니다.
다만 좀 다르다면 ‘다수당을 무기 삼아 야당 의원들은 고압적’이고, ‘국무위원들은 피해의식 가득해 보이다 못해 화가 난 모습’ 정도겠네요.
물론 국무위원이 무조건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어금니 물고’ 꾹 참으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느 정도 격식과 예의를 갖춘다면 더 좋다는 얘기지요. 문재인 정부 초기 이낙연 국무총리의 대답이 화제를 모았던 게 하나의 예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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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 발언 중에 회에서 “도대체 과학이라고 하는 건 1+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의 평소 발언을 생각하면 ‘이상한 말’은 아닙니다. 다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편 가르기하는 모습이 유난히 강해 보입니다. 다수야당에 치인 피해의식 때문일까요?
‘정쟁의 불문율’ 같은 것은 사라져가는 모습입니다. ‘우리 아니면 적’ 식의 단순 논리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한국 정치의 비극적 운명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