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방광에서 페트병까지 [물에 관한 알쓸신잡]

물을 담을 용기의 변천 과정
  • 등록 2022-09-17 오전 11:30:00

    수정 2022-09-17 오전 11:30:00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오래 전 ‘부시맨’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아프리카 상공을 비행하던 경비행기 조종사가 아무 생각없이 빈 콜라병을 비행기 밖으로 내던지면서 시작됩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콜라병은 부시맨이 살고 있는 원시 부족 마을에 떨어지는데 콜라병을 난생 처음 본 부시맨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신의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시맨들이 처음 보는 신기한 콜라병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면서 콜라병의 인기는 점점 높아집니다. 인기를 넘어 콜라병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바람에 평화롭던 부족에는 싸움이 끊이질 않습니다.

대책을 고민하던 부시맨들은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콜라병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합니다. 바로 세상의 끝에 살고 있는 신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이죠. 세상 끝으로 콜라병을 가져가는 역할은 콜라병을 처음 발견한 자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맡기로 합니다.

주인공 자이는 우여곡절의 긴 여정 끝에 빅토리아 폭포에 도착해 ‘신의 물건’인 콜라병을 절벽 아래로 던집니다. 이 장면을 돌이켜 보면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없애기 위해 ‘운명의 산’을 찾아가는 여정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구성된 허구의 플롯이지만 겨우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준의 원시 부족에게 투명하고 단단한 콜라병은 분명 신기한 물건이었을 겁니다. 그것도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말이죠.

부시맨들은 콜라병을 열매를 깨뜨리거나 곡식을 빻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지만 콜라병의 원래 용도였던 액체를 담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부시맨들은 콜라병에 물을 담을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 듯합니다.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가지고 다니기에는 참 불편합니다. 들고 다니기 무겁고 새지 않게 보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지금은 다양한 소재의 물통이 있어 가볍고 새지 않는 건 기본이고 보온 기능까지 갖추고 있지만 말입니다.

물을 담을 변변한 용기가 없었던 고대 인류는 물을 저장하거나 운반하기에 많은 불편을 겪었을 겁니다. 고대 인류가 물가에 터를 잡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삶의 터전이나 사냥감을 찾아다니다 보면 물을 구하기 어려운 사막이나 산을 지나는 경우도 생겼고 차츰 물통이 필요해지기 시작합니다. 초기의 물통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했습니다.

박과 같이 껍질이 단단한 열매의 속을 파내어 물을 담거나 동물의 방광과 가죽을 이용해 물통을 만들었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타조알에 구멍을 뚫어 물통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릇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물이 새지 않는 도자기가 만들어졌지만 무겁고 깨지기 쉬워 먼 길을 떠날 때 물통으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호리병박이나 동물 방광에 가죽을 덧댄 물통이 여전히 인기를 끌었던 이유입니다. 동물 방광을 이용한 물통은 물이 귀한 사막에서 주로 쓰였기 때문에 재료를 제공한 동물도 사막 지역에서 기르는 염소나 양이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동물 방광에서 시작한 물통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재료도 금속, 유리, 플라스틱 등으로 다양해집니다. 특히 플라스틱의 발명은 기존 물병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를 한꺼번에 해결합니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저렴하고 오래 쓸 수 있고 물이 새지도 않습니다. 물을 담는 그릇이 가져야 할 기능을 완벽하게 갖춘 셈입니다. 플라스틱이 가진 완벽함 때문에 플라스틱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한민국을 예로 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년 33억개가 넘는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고, 59억개의 페트병을 사용합니다. 모든 연령의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이 매년 플라스틱 컵 65개, 페트병 96개를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을 사용하지만 사용 후에는 모두 버립니다. 플라스틱은 매번 쓰고 버려도 가격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이지요.

플라스틱이 가진 저렴하다는 장점은 사용 후 쓰레기로 전락하는 단점이 됐고 오래 쓸 수 있다는 강점은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약점이 됐습니다. 우리가 지금 심각한 플라스틱 오염을 겪고 있는 이유입니다.

영화 ‘부시맨’에서는 비행기 조종사가 무심코 버린 콜라병이 평화롭던 부시맨 부족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최근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 뉴스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이 자연에게는 ‘부시맨의 콜라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자이가 우여곡절의 긴 여정 끝에 콜라병을 절벽 아래로 던진 후 마을로 돌아오면서 끝이 납니다. 과연 우리는 플라스틱을 없애는 우여곡절의 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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