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탐구생활] 노무현은 비례민주당에 찬성했을까?

괴물 선거법 후폭풍에 여야 비례전용당 논란 극심
민주, 여론 눈치보며 비례전용당 창당 저울질
정치적 대의명분 없는 비례당 창당은 후안무치
  • 등록 2020-03-04 오전 6:10:00

    수정 2020-03-04 오전 6:10:00

16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유세에서 연설하는 노무현 후보(사진=노무현재단)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다. 원칙을 지키면서 지는 것과 원칙을 어기면서 이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나은지는 상황과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서 패배하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패배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잃고 패배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노무현자서전 ‘운명이다’ 中)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와 ‘누더기’ 연동형 비례제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이다. 지역구 의원은 총 253명이다.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각 1명씩만 당선자가 나온다. 비례대표 의원은 총 47명이다. 배분방식도 간단하다. 여야 정당이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눠 갖는다. 소선거구제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극단적으로 전국 253개 지역구 선거에서 A정당 후보가 B정당 후보를 모두 1표 차이로 이겼다고 가정해보자. 득표율 차이는 0.01% 미만의 초박빙이다. 의석수는 253대 0이다. 바로 승자독식이다. 소선거구제가 핵심인 현행 선거법은 90년 3당합당 이후 30년간 영호남에 각각 뿌리를 둔 거대 양당이 의회를 독점한 근본 이유다. 유권자 표심은 극단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예전부터 이어졌지만 변화는 없었다. 여야가 달라진 건 2018년 12월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핵심은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국회의원 의석을 보장하는 것이다.

보다 쉽게 말하면 지역구 의석이 많을수록 비례대표 의석은 줄어든다.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은 환호했다. 민주당은 어쩔 수 없는 전략적 후퇴를 선택했다.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결사반대했다. 이후 논의과정은 코미디다. 정개특위 자문위가 의원정수 360명 확대를 권고했지만 여야는 국민을 설득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패스트트랙 충돌사태가 이어졌다.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에 연동율 50%를 적용한 ‘심상정 원안’이 탄생했다. 지역구 28석 축소 문제로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제로였다. 정의당은 원안에 반대하는 몰염치를 선보였다. 석패율제 도입, 연동형 상한선을 놓고 여야는 우왕좌왕했다. 결과는 누더기였다. 현행처럼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이었다. 또 비례 47석 중 30석 상한으로 연동율 50%가 적용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게임의 룰’이 지나치게 복잡해졌다. 비례대표 선출은 수학 고차방정식처럼 어려워졌다. 손쉽게 이해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괴물 선거법이 잉태한 비극과 민주당의 눈치보기

괴물 선거법은 탄생부터 비극을 잉태했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해온 미래통합당이 약한 고리를 찾아냈다. 지역구 선거를 포기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었다. 정당정치의 기본원칙을 뒤흔드는 꼼수였다. 여야 정당이 융단폭격을 쏟아냈지만 통합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은 결국 현실화됐다. 설마하던 민주당이 바빠졌다. 통합당이 비례의석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4울 총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 탄핵시도는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민주당 안팎에서 비례민주당 불가피론이 조심스럽게 일었다. 비례민주당 반대를 외치는 인사들은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매도됐다. 통합당이 비례에서 20석을 확보하고 시작할 경우 총선승리가 어렵다는 현실론에 굴복한 것이다. 구체적 시기와 방식이 문제인 뿐 비례민주당 또는 범진보 연합정당 탄생은 기정사실이다. 이해찬 대표는 침묵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그래도 민주당의 선택은 후안무치다.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대의명분이 없다. 민주당은 현실론을 내세우지만 비례민주당 시도는 심각한 자기부정이다. 이제와서 연동형 비례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려 한다면 지난 연말 선거법 강행처리는 왜 했는지 의문이다. 도대체 설명할 길이 없다. 그동안 통합당의 비례당 창당을 맹비난한 건 어떻게 주워담을 것인가. 설령 민주당이 비례전용당 열차에 올라선다 해도 전망은 불투명하다. 비례민주당 창당이 원내 제1당을 보증하는 게 아니다. 추가로 비례의석을 얻어도 정의당이 기를 쓰고 독자완주할 경우 수도권 박빙 선거구에서 그 이상의 의석을 잃을 수 있다. 더구나 민주당의 총선전망이 어두운 것은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비례의석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정치공학의 산물만은 아니다. 근본 원인은 민주당 실력의 문제다. 마스크 가격도 잡지 못하면서 부동산가격 안정에 나서겠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우스개가 넘쳐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노무현은 원칙있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민주당 당사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는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의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명한 어록 중 하나다. △원칙이 있는 승리 △원칙을 어기면서 승리 △원칙을 지키면서 패배 △원칙을 지키지 못한 패배 등 선거에 임하는 자세를 분류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원칙을 지킨 패배’가 대부분이었다. 92년 14대 총선 부산 동구 낙선, 95년 부산시장 선거 낙선, 2000년 16대 총선 부산 북강서을 낙선이었다. 특히 16대 총선에서 재선이 유력했던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을 선택한 건 ‘바보 노무현’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원칙 있는 승리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칙을 잃은 패배도 없었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전은 오히려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치적 반대자마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정성만큼 인정할 정도다.

민주당 입장에서 최상의 카드는 ‘원칙있는 승리’다. 현실은 다르다. ‘원칙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승리를 얻겠다’로 요약된다. 이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4월 총선까지는 남은 기간은 고작 40여일이다. 비례전용당 창당에 일찌감치 나선 통합당과 비교할 때 장애물이 너무 많다. 창당한들 총선승리가 담보되는 것도 아니다. 소탐대실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정치적 원칙을 내팽개치고 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민주당의 ‘현재’는 지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슬픈 역사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이후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민주당 스스로의 힘으로 쌓아올린 정치적 자산은 그리 많지 않다. 통합당과 비교했을 때 경제·외교안보·사회통합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것도 사실 따져보면 없다. 오십보 백보다. 비례전용당 논란에 대한 민주당의 최종 선택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묻고 싶다. 만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었다면 과연 비례민주당에 찬성했을까? 분명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있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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