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이제는)②타협과 조정, 원칙을 흔들다

노조협조 아쉽다보니 원칙 훼손
  • 등록 2007-01-21 오후 2:19:25

    수정 2007-01-22 오전 5:08:07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지난해 12월 29일 현대차(005380) 김동진 부회장은 환율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난데없이 노조 이야기를 꺼냈다.

김 부회장은 "노조가 협조한다면 달러/원 환율이 900원 아래로 떨어져도 영업이익률 5% 이상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며 "노조의 비협조가 위기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사실 수출비중이 높고 부품 국산화율이 높은 현대차의 입장에서는 환율은 '천재지변'과 다를 바 없다. 환율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 볼 수 있는 건 '원가절감'뿐이다.  환율로 손해보는 부분을 안팎에서 '짜내는' 수 밖에 없다.

◇ "노사문제에 거품이 제일 많다"

가장 손쉽고 즐겨 쓰이는 방법은 협력업체들의 부품 납품가를 인하하는 방법. 자동차가 부품들의 조합이라고 본다면 부품 값을 더 낮춰서 원가를 줄이는 게 답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대차의 경쟁력 확보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현대차 납품업체의 한 임원은 "현대차가 늘 그런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해 온 게 사실"이라며 "그러다보니 기술개발과 품질개선은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경쟁력은 사실상 부품의 품질 경쟁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납품단가를 낮추는 압력에 시달리는 부품업체들은 연구개발에 투자할 비용도 없을 뿐더러 그런 자금이 있어도 '신기술'이나 '고품질 제품'을 개발하는 일 보다는 '원가절감'을 위한 연구에 올인하게 된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박사는 "그러다 보니 결국 현대모비스같은 현대차 계열사들이 핵심부품은 모두 직접 개발할 수 밖에 없고 부품업체들이 해야 할 부분을 현대차가 직접 하다보니 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김동진 부회장이 '노조의 협조'를 환율문제 해결의 포인트로 들고 나온 것도 노사관계에서 비용을 절감할 여지가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노조가 협조를 해야 한다는 뜻일까. 현대차 관계자는 "여러가지 문제들 가운데서도 시장상황에 따라 생산라인의 인력배치를 탄력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랜저가 덜 팔리고 아반떼가 많이 팔리면 그랜저 생산라인의 작업자를 아반떼 라인으로 옮겨서 대응을 해야 하는데 그게 회사 맘대로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숙련도가 떨어지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투입하게 되고 여러가지 비용이 늘어난다.

노조에서 생산라인의 탄력전환을 반대하는 이유는 '근로환경의 악화' 때문이다. 다른 차종으로 일이 바뀌면 업무가 숙달될 때까지 더 힘들고, 낯선 사람들과 익숙해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업무의 안정성=고용의 안정성'이라고 해석하는 근로자들의 사고방식에도 원인이 있다.

근로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98년 외환위기 때의 정리해고의 경험은 노사관계를 악화시킨 주범이다. 어차피 고용이 안정되지 못할 바에는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생각으로 바뀌게 됐고,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집착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라인배치 문제 역시 라인을 옮겨가면서 다양한 차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업무의 탄력성을 높이는 게 근로자 개인의 승진이나 급여에 별로 도움이 못을 주지 않는다는 구조도 문제다. 1년에 한차례 뿐인 임금협상 외에는 사측과 대응할 무기가 없고 잔업이나 특근은 근로자들이 더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생산라인 조절에 합의하는 권한이 노조에게는 놓기 어려운 카드라는 측면도 있다.

◇ 왜 원칙대로 못하나

외부에서 보면 자기 회사 공장에서 근로자들에 대한 작업지시와 배치조차 원하는 대로 하기 어렵다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차가 '노조에 끌려다닌다'거나 '원칙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현대차의 노사관계를 들여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쏟아져 나온다.

생산목표를 내려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하도록 독려하는 이른바 '뚝심 경영'이 아래로 내려가고 내려가다가 충돌하는 곳이 노무관리자와 노조의 사이쯤 되는 지점이다. '현대차가 호황이면 노조가 강해진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생산목표를 달성하라고 압력이 내려오면 당장 잔업과 특근을 해야 하는데 잔업과 특근 자체가 근로기준법의 원칙에 어긋나는 방식이어서 근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노조와의 타협과 조정이 필수적이다. 현대차가 혼자 원칙을 세우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는 것은 이처럼 사회의 모든 시스템과 전방위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산목표 달성 지시가 위에서 내려오면 당장 노조의 협조가 아쉬워진다"며 "그러다보면 평소에 노조 간부들과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 둘 필요가 있고 그 과정에서 원칙이라고 불리는 것의 상당부분이 훼손된다"고 털어놨다.

98년 정리해고를 실시하면서 내보낸 근로자들이 외환위기 이후에 다시 복직되면서 정리해고를 진행한 노무관리자들과 다시 현장에서 마주치게 된 것도 관리자들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단면 가운데 하나다.

현대차에서 노무관리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정리해고 진행과정에서 각종 폭행사건이 있었는데 정리해고의 부작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모두 사측에서 취하해준 것은 실제 현장에서 폭행을 당한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리해고 됐다가 복귀한 근로자 역시 '저 놈이 나를 내보낸 놈'이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어서 여러가지로 불편했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무관리자들 역시 '나서서 원칙을 만든다고 잡음을 내는 것 보다 조용히 탈 없이 달래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사관계에서 일단 원칙을 세우기 시작하면 다른 모든 것들도 다 원칙대로 가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노조의 협조가 필요없는 구조를 만드는게 노조에 끌려다니지 않는 해결책이긴 한데 그럴 경우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어떻게 원칙대로 법대로 공장을 돌리겠냐"고 반문했다.
 
◇ 국회의원 같은 노조
 
현장의 근로자를 대변하는 노조의 조직과 운영이 단기 성과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도 현대차 노사갈등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노조의 집행부 임기는 2년으로 임기동안 1차례의 단체협상과 2차례의 임금협상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입장의 집행부를 대상으로 '5년만 참아주면 서로에게 훨씬 이익'이라는 논리는 통하기 어렵다. 전문경영인들이 회사의 근본적인 경쟁력 향상보다는 단기적인 경영 성과나 주가상승에 집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조 조직이 다양한 계파들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집행부로 선출되더라도 노조원 절반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마치 '여소야대' 정부처럼 노조 집행부가 현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에 생산목표가 떨어지면 노무관리자들은 노조의 협조를 받기 위해 속된 말로 '통사정'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노조 대의원들의 입김은 강해진다.
노무 관리자들 역시 임기가 정해진 직원들이다 보니 장기적인 관계개선을 추구할 인센티브가 없다. 
 
현대차의 한 근로자는 "뭔가 필요한 문제가 있을 때 회사의 공식적인 조직과 단계를 통해서 요구하면 잘 되지 않는 일이 노조 대의원을 통하면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무 관리자들은 생산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대의원들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고 대의원들은 그런 일을 통해 근로자들의 지지를 얻는 악순환이다.

마치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권한을 무기로 지역 민원 해결사로 나서는 것과 비슷하다. 현대차 노사관계에서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은 이런 사소한 부분이지만 현대차라는 개별 기업의 차원에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 사회 각층의 '파편적' '편파적'인 관심도 부작용 유발

현대자동차가 국내 제조업체를 대표하는 기업이다보니 현대차의 문제를 현대차 내부에서 내부의 논리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큰 걸림돌이다.

현대차의 노사갈등이 불거지면 사회 각부문의 이해 당사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담아 '현대차를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포장해서 '이게 바로 해결책'이라는 식으로 쏟아낸다.
 
그런 목소리들의 주체가 현대차 노사의 입장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비중을 가진 조직들이다보니 답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을 때가 많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사 관계의 원칙을 세우라는 사회적 압력이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초읽기'에 몰려 악수를 두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실제로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게 문제가 아닌데 여론 주도층이 문제를 다르게 해석하면 그 방향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때로는 본질을 훼손하는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이번 성과급 문제를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계의 기반을 흔드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전체 노동계 차원에서 대응하려는 반응도 현대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다. 현대차의 노사관계가 재계와 노동계의 대리전으로 확산될 경우 '환율위기 극복을 위한 탄력적 노사관계'라는 숙제는 순위가 한참 뒤로 밀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98년 외환위기 당시 일부 직원의 정리해고를 시행한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악수를 둔 측면이 있지만, 당시 현대차의 입장에서는 노동계와 정부의 대립적인 입장과 분위기를 감안할 때 정리해고의 실시 여부를 회사의 수익과 노사관계의 차원에서만 생각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노조 관계자도 "국민들의 여론은 언론의 보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언론들이 상식 이하의 수준으로 보도를 하는 바람에 난감하다"며 "논조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관계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단순히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보도하는 것에 따른 반발이라기 보다는 자꾸 그렇게 오해를 유발시키면 노사협상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번 성과급 파업 역시 현 집행부 계파가 선거를 겨냥해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억지로 강행한 정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저의를 아는 다른 경쟁 계파들이 왜 파업에 동의를 해줬겠느냐"며 "언론들의 미숙하고 단편적인 분석이 상황을 자꾸 악화시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업때 일 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노동 무임금'원칙이 적용되어 임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노조가 파업이 끝나면 임금을 다 받아가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도 정규수당과 보너스를 구별하지 않고 '회사는 피를 보고 노조는 돈 챙겨서 휴가 떠난다'는 일방적인 보도태도의 영향이 크다.

이 부분을 노조는 '억지 여론을 부추기는 사측의 음모'로 해석하지만 회사도 마찬가지로 부담을 느낀다. 현대차 관계자는 "파업기간동안의 임금은 당연히 지급하지 않으며 그 해에 나갈 각종 수당과 보너스를 파업 종료 후에 여름 휴가에 맞춰 지급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며 "그런 걸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못 세웠다고 몰아부치는 건 참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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