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당신은 진정 잘 살고 있습니까?

- 심사위원 리뷰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소설 원작, 시청각적 요소 적극 활용
감각적 연출력…젠더의식 취약 아쉬움도
  • 등록 2019-05-23 오전 6:00:00

    수정 2019-05-23 오전 6:00:00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이은경 연극평론가] 두산아트센터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윤성호 각색·신유청 연출, 6월 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는 영화감독 이창동의 단편 소설(1992)이 원작이다. 아파트로 상징되는 경제력이 신분의 척도가 되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평범한 소시민의 삶에 주목해 인생의 의미를 성찰케 한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 준식은 학교 급사로 일하며 어렵게 야간대학을 졸업해 교사가 된 인물이다. 아홉 번 실패 끝에 서울 외곽에 있는 23평 아파트에 당첨되자 마침내 인간답게 살게 됐다는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10여 년 만에 이복동생 민우가 찾아오면서 평온하던 그의 삶은 무너져 내린다. 아내 미숙은 그와 동생을 노골적으로 비교하며 준식이 잊고 있던 부끄러운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형제인데도 이들의 삶은 현실과 이상, 열성과 우성, 속물과 순수, 기름과 물처럼 만나지지 않는다. 결국 준식은 운동권으로 수배 중이던 민우를 자신의 삶에서 밀어내려고 경찰에 신고한다. 잡혀가는 동생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도망치다 쓰러진 똥 무더기 위에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직시한다. 행복한 집이라고 믿었던 아파트는 거대한 쓰레기 퇴적층 위에 지어졌고 문밖의 세상은 온통 오물 천지의 똥구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 원작을 연극으로 풀어내기 위해 시청각적 요소들을 적극 활용한다. 계속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준식의 불안한 심리를, 거울 깨지는 소리는 파탄 난 부부관계를 암시한다. 준식의 내면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 뫼비우스의 띠처럼 엇갈리는 인물들의 움직임은 시공간을 쉽게 넘나들게 하고, 상상과 현실을 교차시킨다.

좌우로 긴 무대에는 구상과 추상이 혼재한다. 익숙한 가재도구들이 흩어져 있는 아파트 안과 공사장의 흙더미가 쌓여 있는 아파트 밖의 경계에는 양변기가 놓여 있다. 준식의 민낯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아파트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는 땅이 아니라 나무탁자 위에 불안정하게 놓여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급격하게 무너져 내릴 준식의 삶을 예상케 한다. 푸른 조명, 물방울 영상 등에 의해 반복적으로 환기되는 수족관 이미지는 비닐 봉투 속의 죽은 금붕어와 연결되어 삶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연출이 명명한 ‘소리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에서 준식의 주위로 스치듯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자가 뒤따른다. 실재와 허상처럼 준식이 믿는 삶과 실제 삶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는 똥 무더기 위에서 울고 있는 준식의 옆을 가로지르며 집을 닦는다. 하지만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물 자국을 길게 남긴다. 심지어 오물이 비처럼 쏟아진다. 오욕된 삶의 흔적을 직시하는 준식의 내적 고통이 설득력 있게 표현된다. 소파를 미끄러져 내려와 바닥에 구르는 인상적인 움직임으로 연출된 아내와의 정사장면, 동료교사들과의 술자리에서 삶의 허무함과 천박함을 느끼는 준식의 독백장면 등에서 확인되는 감각적인 연출력이 돋보인다. 양식과 사실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부모·아내를 다루는 방식에서의 젠더 의식 취약성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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