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같이… 나이 든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

이창동 감독 영화 ''시'' 주인공으로 스크린 나들이하는 윤정희
16년 만에 영화 출연…
“늘 연기란 무엇인가 생각… 삶을 재현하는 것은 매력적… 좋은 작품 기다리고 있었죠”
  • 등록 2010-04-15 오전 8:43:31

    수정 2010-04-15 오전 8:43:31

[조선일보 제공] 66세 여배우의 얼굴이 약간 상기돼 있었다. 16년 만에 새 영화를 찍었고 극장을 가득 메운 기자들 앞에서 영화 제작보고회를 막 끝낸 뒤였다. 이창동 감독의 새 영화 '시(5월 13일 개봉)'에서 주인공 미자 역할을 맡은 배우 윤정희를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의 새 영화에 대해 "내가 연기를 더 잘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영화적으로 참 좋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영화적으로 좋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영상을 통해서 중편소설을 읽는 느낌이에요. 소녀 같은 60대 여성이 시 쓰는 걸 배우는 도중 큰 사건이 일어나는데,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물 흐르듯이, 과장이나 꾸밈없이 정말 잘 그렸어요."

1967년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문희·남정임과 함께 1세대 트로이카로 불렸던 윤정희는 1994년 '만무방'까지 무려 300여편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고는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16년 만에 다시 현장에 간 기분이 남다를 텐데요.

"꼭 옛날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오랜만이란 느낌은 없었죠. 그동안 청룡영화상 심사위원만 10년쯤 했고, 몬트리올과 도빌에서도 심사위원을 했죠. 영화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 작고한 미당(未堂)과도 각별했으며 김승옥, 최인호 작가와도 친하다는 윤정희는“글재주만 있었다면 문학을 했을 텐데”라며“시 쓰기를 배우는 이번 영화 캐릭터와 실제의 내가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창동 감독과 평소 친분이 있었습니까.

"아니에요. 영화제에서 인사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2년 전쯤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양쪽 부부가 함께 저녁을 했어요. 그때 이 감독이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말을 안 하고 쓰려니까 마음이 무겁다'고 해요. 얼마나 저에게 기쁜 소식입니까. 주제가 뭔지 내용이 뭔지 묻지도 않고 좋다고 했어요. 믿음이 있으니까요."

―그 믿음은 어떻게 생긴 겁니까.

"이 감독의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생긴 거죠. 그리고 그 믿음이 옳았어요. 감독의 인상도 좋고 작품도 좋고 사람도 예의 바르고…. 엑스트라까지 모두 감독 연출에 공감해서, 단 한 컷 나온 사람까지도 모두 연기를 잘했어요."

윤정희는 그간에도 영화·연극 몇 편의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으나 "더 좋은 작품을 기다렸다"며 "쉬고 있었던 게 아니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때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가 뭔가 쓰려고 가방에서 종이쪽지를 꺼냈다. 그 쪽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연기란? 삶을 재현하는 것. 삶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차원까지 끌어올리는 것." 그녀는 "생각나는 걸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아직도 '연기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게 무척 인상적입니다.

"연기란 무엇인가 늘 생각하지요. 배우라는 직업이 정말 매력 있어요. 제 남편(피아니스트 백건우)은 피아노가 악기지만, 저는 제 몸이 악기잖아요. 제 악기로 삶을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존경하는 한국 배우로 고 김승호(1918~19 68)씨를 꼽은 윤정희는 이번 영화에서 그의 아들 김희라와 연기했다. 그녀는 "그토록 뛰어난 배우 부자(父子)와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영화 출연을 하지 않았던 기간이 한국 영화계엔 무척 중요한 기간이었죠.

"누벨 바아그(새로운 물결)! 새로운 감독들이 많이 나타났고 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죠.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같은 일본 감독이 구라파에서 먼저 인정받았고 그다음 중국과 대만 감독들이 돋보였죠. 지금은 우리나라의 시대예요."

―'시'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가면 레드 카펫도 밟겠군요.

"기도해 주세요. 제 인생은 희망과 용기와 인내로 만들어 왔어요. 그래서 칸 영화제에도 희망을 갖고 있지요."(칸 경쟁부문 진출작은 20일 발표 예정이다.)

―파리에 사시니까 칸 영화제는 가보셨겠군요.

"한 번도 안 갔어요. 자기 작품이 가야 가는 거죠. 물론 칸은 여러 번 갔어요. 제 남편이 칸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연습을 했어요. 너무 초라하고 분위기가 없는 공간이더라고요. 그런데 왜 TV로 볼 때는 그렇게 멋있었을까. 훌륭한 배우와 감독들이 그렇게 만들었던 거죠."

―칸 영화제에 가지 않은 건 배우의 자존심 같은데요.

"불필요한 자존심은 거만이죠. 그러나 영화배우로서의 자존심을 갖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겠죠.

"저는 그레타 가르보처럼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스톱하지 않을 거예요. 오드리 헵번같이, 잉그리드 버그먼같이 나이 먹어가는 모습과 세월 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관객들이 저에게 그런 용기를 주신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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