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해서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 나쁠까? 이런 질문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던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이기 때문에 단순한 설문조사 결과는 그다지 신뢰할 만 것이 못된다.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통찰력의 기반 위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였던 이사야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1953)’라는 저서에서 두가지 인간유형을 설명하고 있다. 고슴도치형은 모든 것을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에 관련시키고, 이런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여우형은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면서 생각의 방향을 좁혀가기 보다는 확산시키는 경향이 크며, 산만하고 분산적이다. 그런데 여우가 제 아무리 꾀를 부려 본들 한가지 확실한 호신법을 갖춘 고슴도치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고슴도치 예찬론자들은 의리나 명분, 이념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회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고슴도치들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여우가 옳다는 주장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정치예측전문가로 유명세를 탔던 네이트 실버가 쓴 ‘신호와 소음(2012)’이다. 네이트 실버는 고슴도치형 전문가들의 미래예측이 현실에서는 적중률이 형편없었다는 사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슴도치들은 ‘자기 편견을 증거에 갖다 붙임으로써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표적인 고슴도치형 전문가였던 칼 마르크스의 예언도 맞아 떨어진 게 없다. 하지만 고슴도치형 전문가들에 대한 인기는 높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하고, 누가 적인지를 명확하게 해주고, 만병통치약 같은 시원한 처방을 내려주기 때문이다.
새해 맞이하게 될 환경도 변동성이 높고,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모호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관성을 강조하고,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특히 우리 사회 최대의 쟁점이 되어버린 부동산정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24번이나 발표된 부동산정책을 차기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어받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당위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공임대 중심의 공급정책, 재개발과 재건축 억제, 세제 강화, 대출규제 강화 등은 복잡한 시장상황이나 성난 민심을 감안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일관성 있게 지켜야 할 것은 서민 주거 안정이나 주거복지와 같은 ‘원칙’이지 곁가지에 해당하는 잘못된 처방이나 정책이 아니다. 부동산정책의 영역에서도 여우 같은 고슴도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