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은행을 너무 믿은 죄

  • 등록 2020-08-31 오전 7:45:00

    수정 2020-09-07 오후 3:36:11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등 라임 무역펀드 판매사가 투자원금 전액을 돌려주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금융회사가 판매한 금융상품에 대해 소비자에게 전액을 물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 동양그룹 사기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나 최근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헙펀드(DLF)사태를 포함해 수많은 금융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역대 최고 배상비율은 80%였다. 100% 배상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결정이다.

그래서 금감원의 100% 배상 권고가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무너트렸다는 비판이 많다. 투자경험이 많은 사모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최소한의 투자 책임은 물어야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라임 무역펀드에 대해 자기책임의 원칙을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라임 무역펀드는 이미 판매 시점에 투자원금 상당 부분에서 손실이 발생한 상태였다. 투자자는 이 상품에 가입하는 순간 거의 투자원금을 날리는 구조였다. 라임 무역펀드 사건은 단순한 불완전판매가 아니라 사실상 금융사기였다는 얘기다. 사기 앞에서 신의칙이나 자기책임의 원칙을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물론 판매사는 억울하다.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것이다. 운용사인 라임의 사기를 모른 채 팔았는데,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것은 지나치다고 항변한다. 그렇더라도 소비자들은 판매회사의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은행이 파는 상품이 ‘불량’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불량상품은 걸러서 팔았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만약 백화점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면 어땠을까. 백화점에서 산 물건이 알고 보니 엉뚱한 제품이었다면 말이다. 바로 사과하고 환불이나 교환을 해주지 않았을까.

라임 외에도 옵티머스펀드, 디스커버리펀드를 포함해 많은 사모펀드 사건이 검찰의 수사나 금감원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자기책임 원칙도 부정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잃어버린 소비자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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