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인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존엄한 노후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돈이 있어야 한다. 노후를 대비해 자산과 소득을 축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으나 여전히 모아둔 돈 없이 노년층에 접어든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 늘어나는 기대수명에 따른 정년 연장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꼭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동을 통해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정년이 지난 후에라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노인일자리가 늘어난 만큼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문제 제기도 있다. 노인들이 은퇴를 늦게 하고 새로운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마치 젊은이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선진국에선 기계로 대체했을 때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일자리를 없애지 않고 노인들을 고용함으로써 노인들이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 문제는 고용시장의 논리가 아닌 복지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노인 일자리가 몇 개 더 는다고 젊은이의 고용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노인의 고질적인 가난과 이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우울증, 자살과 같은 병리적 현상들을 해결할 복지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지향하고 노인들은 주민센터 민원 안내, 키오스크 사용 안내와 같은 비교적 단순한 일자리를 맡는 방식으로 고용시장을 이원화하면 어떨까. 단순 반복 노동에 젊고 패기 있는 인재들이 고용안정성만을 바라보며 목을 매는 것은 그 개인에게도 손해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다. 젊은이들은 어렵지만 잠재력을 최대한 키울 수 있는 직종에 집중하고 노인들은 남은 여생을 소일할 수 있는 직종을 맡을 수 있다면 노인 빈곤 문제도 해결하고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도 키울 수 있다.
진보든 보수든 정권을 잡으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일자리 문제다.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활력은 떨어지고 성장은 둔화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복지도 하고 개발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일자리가 곧 복지라고도 한다. 노인 복지 역시 그들이 일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어쩌면 더 많은 노인 일자리가 우리 사회를 더 젊고 활력 있게 만들지 모른다. 지혜를 모아볼 때다.
첫째, 순차적 정년연장이 시급하다. 직종과 업무 성격에 따라 세분하면서 축적된 기능과 숙련, 학습의 난이도 그리고 노동생산성 중심으로 정년연장을 진행해야 한다.
둘째, 노인 일자리를 위한 산업 훈련 교육이 체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 조차 힘든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이제까지 국가에 의무를 다한 국민에 대한 직무 유기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생존권을 보호해주고 적합한 일자리에 맞는 장년 재교육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
넷째, 일할 수 없는 병약 계층에는 오히려 인권적 생존권적 복지를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 재원의 선택과 집중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길이다.
이를 위해 효율적이고 낭비 없는 복지 재원 전달 시스템을 공고히 다져져야 함은 물론이다. 각종 사업의 시행과정에서의 누수와 낭비는 필요악이 아니라 척결 되어야 할 부패와 무능, 무사안일의 결과이고, 이는 국민 부담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각 부처와 기관별로 분산되고 흩어져 있는 기능의 협력 조율 기능 또한 시급하다. 필요하다면 여성과 청소년을 위한 여성가족부처럼 노인지원과 활용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노인지원청’을 만들어서라도 국가적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노인층의 권익을 위한 정치적 공간 확대도 필수적이다. 노인정책을 우선시하는 정치적 견해에 대한 응원과 지원은 노인 스스로의 몫이며 스스로 목소리도 넓혀 나가야 한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노인 폄훼와 박탈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은 평생 국민의 의무를 다한 이들이다. 누가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