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통해 성장통 겪거나…한국사회 부조리 고발하거나

청소년 시선에서 본 청소년극
- 국립극단 '타조 소년들'
친구 유골 들고 영국대륙 횡단
보편적 청소년 성장담 그려
- 남산예술센터·극단 신세계 '파란나라'
집단주의 매몰된 교실 그려
평등에 가려진 '파시즘' 비판
  • 등록 2016-11-22 오전 6:05:00

    수정 2016-11-23 오전 12:03:27

한국에서 흔치 않게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 두 편이 나란히 공연 중이다. 국립극단의 ‘타조 소년들’은 친구의 죽음을 접한 세 청춘을 통해 보편적인 청소년 성장담을 이야기한다(사진=국립극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청소년은 적극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이도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챙길 수 있는 어른도 아니다. 그렇기에 무엇이든 꿈꾸고 도전할 수 있다. 청소년기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유독 청소년의 성장에 관심이 부족하다. 오로지 ‘학습’과 ‘복종’만을 강요한다. 청소년을 주체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연극·드라마·영화 등 문화예술 장르에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간혹 있다고 해도 어른의 시선으로 청소년을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개막한 국립극단의 연극 ‘타조 소년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신세계가 공동제작한 연극 ‘파란나라’는 청소년의 시선에서 청소년을 바라본 흔치 않은 작품이다. ‘타조 소년들’이 보편적인 청소년의 성장담이라면 ‘파란나라’는 특수한 사회적 여건을 통해 바라본 청소년의 현실이다.

△ 결핍 속에서 성장하는 청춘 ‘타조 소년들’

“우린 완전 X됐다.” 블레이크와 케니, 심은 갑작스럽게 죽은 친구 로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영국 대륙을 횡단하는 무모한 여행을 떠난다. 로스의 유골을 집에서 400㎞ 거리의 작은 시골마을로 옮겨가는 것이다. 긴 여정 끝에 마을에 도착한 이들은 그러나 뜻밖의 결말을 맞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타조 소년들’(12월 4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은 영국작가 키스 그레이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소설을 2014년 국립극단이 세계 최초로 무대에 올렸다.

‘데미안’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대표적인 성장소설과 마찬가지로 ‘타조 소년들’도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기 마련인 결핍과 성장 이야기를 담는다. 그 속에서 그들의 여정은 친구의 죽음이란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과도 같다. 그러나 몸부림은 남은 이들에게서도 갈등과 균열을 일으킨다. 결국 이들이 깨닫는 것은 그토록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사실은 타조처럼 모래에 고개를 파묻은 채 서로의 아픔을 못 본 체했다는 사실이다.

연극은 4명의 배우와 간소한 세트·도구만으로 꾸려간다. 4명의 배우가 소설에 등장하는 20여명의 배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초연에서 블레이크·케니·심·로스를 연기한 배우 박용우·김평조·김지훈·오정택이 다시 호흡을 맞춘다.

연출을 맡은 토니 그래함은 “초연이 흑백의 그림이었다면 이번에는 좀더 컬러풀한 그림이 됐다. 특히 좌석과 무대 위치를 바꿔 관객이 어디에 앉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공연을 볼 수 있게 했다”며 “원작자의 말처럼 모든 청소년은 특별하다는 것,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국립극단의 ‘타조 소년들’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 청소년 현실로 질문 던지다 ‘파란나라’

“파란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막이 오르기 전 가수 혜은이가 1985년에 발표한 ‘파란나라’가 무대에 울린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가보고 싶다는 나라. 그런데 정말 그런 나라가 가능할까.

김수정 연출이 극본까지 쓴 ‘파란나라’(2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는 충격적이면서도 도발적이다. 수업 중 교사가 학생에게 제안한 게임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과정을 통해 집단과 개인, 인간의 양면성 등에 대해 묻는다. 여기에 ‘헬조선’ ‘최순실게이트’ 등 현재 한국사회를 향한 질문도 함께 던져 현실성을 높인다.

작품의 모티브는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큐벌리고교에서 벌어졌던 사건이다. 전체주의에 의문을 갖던 학생들에게 교사 론 존스가 ‘제3의 물결’이란 이름으로 공동체를 만들면서 실험을 시작한다. 실제 사건이 전체주의에 초점을 맞췄다면 ‘파란나라’는 개인과 집단, 차별과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다. 꿈도 의지도 없던 학생들은 모두가 평등한 가상의 공동체 ‘파란나라’를 통해 처음으로 꿈과 희망을 키운다. 그러나 점차 집단주의에 매몰되며 점점 광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10대들이 즐겨 쓰는 비속어 등 실제 고등학교 현장을 고스란히 옮긴 듯한 사실성이 돋보인다. 배우들은 작품을 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연극교사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수정 연출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 속에서 집단과 개인의 이야기를 다뤘다”며 “청소년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신세계의 ‘파란나라’는 실제 한국 고등학생의 현실을 반영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사진=서울문화재단).


△ “청소년 이야기는 곧 우리 이야기”

지금 청소년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그래함 연출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장르로 청소년극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며 “어린이와 청소년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5세 이하, 7∼11세 등 어린 관객을 대상으로 한 전문극단이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미약하나마 움직임이 있다. 극단 북새통, 청소년전문극단 진동 등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국립극단도 2011년 ‘소년이 그랬다’를 시작으로 ‘레슬링 시즌’ ‘빨간 버스’ ‘고등어’ ‘오렌지 북극곰’ 등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청소년극은 ‘청소년만 보는 극’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그래함 연출은 “잘 만든 청소년극은 누구나 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청소년극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하고 진솔하게 내용을 담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행동을 유도하려 든다면 좋은 수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장한다는 건 힘겨운 과정이다. 연극이 그런 고민을 담아내고 공유하는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정 연출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1년 동안의 리서치를 통해 청소년의 일상을 작품에 옮기고자 했다”며 “청소년과 어른 모두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보이고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신세계의 ‘파란나라’의 한 장면(사진=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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