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3년 만에 돌아온 '오네긴', 드라마 발레의 정수를 뽐내다

[리뷰]유니버설발레단 '오네긴'
대사 한줄 없는 어긋난 사랑의 비극
햔 편의 무성영화 보는듯 매력 지녀
  • 등록 2020-07-30 오전 6:01:01

    수정 2020-07-30 오전 6:01:01

발레 ‘오네긴’에서 타티아나 역의 강미선과 오네긴 역의 이동탁이 서로 뒤엉켜 ‘회환의 파드되’를 선보이고 있다(사진=유니버설발레단)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오네긴은 발레 안에 스며든 드라마의 힘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드라마 발레 작품입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UBC) 단장의 평가는 빈말이 아니었다. 접시처럼 퍼진 ‘튀튀’(tutu·발레 치마) 대신 드레스를, ‘타이즈’ 대신 정장 바지를 차려입은 발레리나·발레리노들이 무대 위에서 풀어내는 서사는 한 편의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섬세한 표정과 몸짓 연기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낭만적이고 쓸쓸한 사랑이야기는 코로나19로 지친 발레 마니아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여인 ‘타티아나’와 오만하며 자유분방한 도시귀족 ‘오네긴’의 어긋난 사랑과 운명을 밀도있게 그린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으로, 드라마 발레의 거장 존 크랑코의 안무와 작곡가 쿠르트-하인츠 슈톨제가 차이콥스키의 여러 곡을 편곡해 만든 음악으로 탄생했다. 국내에는 유니버설발레단이 2009년 처음 선보였으며, 이번 공연은 3년 만이다.

‘백미’는 1막과 3막에 선보이는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파드되’(Pas de Deux, 2인무)다. 1막 ‘거울의 파드되’에선 오네긴이 타티아나를 한 바퀴 돌려 들거나, 한 손으로 타티아나를 번쩍 들어올리는 고난이도 테크닉으로 타티아나의 고조된 감정을 표현했다. 3막 ‘회환의 파드되’에서는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팔을 붙잡으며 매달리고, 서로의 몸이 뒤엉켜 하늘을 향해 눕는 동작으로 애증과 갈등, 집착 등을 보여줬다. 특히 ‘회환의 파드되’가 끝나고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떠나 보내며 객석을 향해 두 팔 벌려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짙다.

각종 무대 세트와 소품을 통해 드라마적 요소를 극대화한 것도 매력 포인트. 타티아나의 침실 안에 높은 기둥을 세워 타티아나의 깊은 사랑과 신분상승을 암시한 것, 1막에서 푸른 잎이 풍성했던 여섯 그루 나무가 2막 들어 앙상하게 바뀌어 비극적 결말을 예고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거울과 편지, 결투 등의 소재가 드라마의 이음새를 더 단단하게 잡아줘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여전히 무용계에 회자되는 ‘스타 발레리나’ 출신의 문 단장이 직접 무대에 올라 발레 동작을 선보이며 맛깔스럽게 해설하는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1965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초연 후 20세기 발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슈투트가르트의 기적’이라고 불렸던 발레 ‘오네긴’. 이번엔 유니버설발레단의 손을 거쳐 코로나19 이후 한국의 첫 전막 발레로 이름을 올리며 다시 한 번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코로나19로 힘든 요즘, 사랑의 보편적 본질을 표현한 아름다운 드라마 발레 ‘오네긴’은 따뜻한 위로와 치유를 받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었다.

발레 ‘오네긴’에서 타티아나 역의 강미선이 그레민 공작 역의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와 열연하고 있다(사진=유니버설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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