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김환기와 같은 듯 다른…'유영국의 추상세계'

유영국 탄생 100주년 기념전 '절대와 자유'
'절친' 김환기와 추상미술 쌍벽 이뤄
추상화 선구자 몬드리안 큰 영향
기본적 조형요소로 산·바다 등 표현
작품 100여점·생전자료 등 총망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내년 3월 1일까지
  • 등록 2016-11-28 오전 6:03:10

    수정 2016-11-28 오전 6:03:10

유영국의 ‘산’(1957). 한국 추상미술을 개척한 양대산맥인 유영국과 김환기는 같은 듯 다른 작품세계를 이뤘다. 유영국이 도형 중심의 구상주의에서 출발해 산·바다 등의 보편적 추상성을 추구한 데 비해 김환기는 반구상적 자연에서 출발해 점·면 위주의 독창적 추상성을 구축했다. 1960년 이전 유영국은 완결한 도형보다 간결한 선을 이용한 추상적인 산을 즐겨 그렸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세월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어떤 시대고 간에 꼭 있을 만한 사람을 반드시 심어놓고 지나갑니다. 그 시대 그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역사는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영정을 바라보는데 문득 ‘아 한 시대가 마감하는구나’ 생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조각가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는 2002년 11월 11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원로화가의 빈소에 다녀온 후 ‘고인에게 바치는 편지’를 쓴다. 암울했던 식민지시대와 전쟁의 혼란을 지나 미술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기에도 묵묵히 자신의 화업을 이어가며 한평생 예술가의 길을 추구했던 선배 작가 유영국(1916~2002)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김환기의 친구…추상미술 쌍벽 이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준비한 ‘한국의 근대미술 거장 시리즈’의 마지막 전시로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여는 ‘유영국, 절대와 자유’ 전은 수화 김환기(1913~1974)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1937년 일본 유학시기부터 1999년 건강상의 이유로 절필할 때까지 남긴 100여점의 작품과 사진, 가족인터뷰 등 자료 50여점을 총망라했다.

1940년대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유영국(왼쪽)과 김환기 화백(사진=국립현대미술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유영국은 최근 한국미술품 경매 가격을 연일 경신하고 있는 김환기와 더불어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로 자주 비교의 대상에 오르곤 한다. 실제로 유영국과 김환기는 생전에 각별한 관계였다. 유영국은 김환기에 비해 세 살 적은 후배였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화단에서 ‘추상미술’을 하는 동반자로서 김환기는 유영국을 알뜰히 챙겼다.

유영국과 김환기는 1930년대 후반 일본에서 교우관계를 맺은 뒤 자유미술가협회에 참여하며 함께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본 유학 이후 고향 경북 울진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어부로 생계를 꾸리던 유영국을 1947년 서울대 예술학부 미술과 교수로 초빙한 사람이 바로 김환기였다. 만약 당시 김환기가 유영국을 서울로 부르지 않았더라면 유영국은 계속 울진에서 어부로 생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경한 유영국은 김환기·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해 그룹전을 열며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한국 추상미술을 개척한 양대산맥인 유영국과 김환기는 같은 듯 다른 작품세계를 이뤘다. 김환기의 ‘4-VIII-69 102’(1969)(사진=서울옥션).
유영국이 김환기와 비교되는 이유는 둘 사이의 인간관계도 영향을 미쳤지만 한국 추상미술을 각기 다른 양식으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유영국과 김환기는 일본서 유학을 하고 해방 이후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각각 자신의 예술세계를 심화하기 위해 사회적 명성이나 지위를 버리고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추상세계는 달랐다. 유영국은 작품 초반부터 도형 중심의 구상주의에서 출발해 산과 바다 등 보편적인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려 했고 선·면·형·색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로 화풍을 이뤘다. 반면 김환기는 반구상적인 자연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추상세계로 나아가 전면점화에 이르는 과정을 보인다.

◇절반 넘는 개인소장품…유영국 작품 집대성

유영국은 조선업을 하던 집안의 4남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형편이 넉넉했던 덕에 서울로 유학을 와 경성 제2고보를 다녔다. 장욱진이 동기였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마도로스를 꿈꿨지만 일본인 교사와의 갈등으로 자퇴를 하는 바람에 진학이 어려워 일본문화학원으로 가 미술을 배웠다.

당시 유영국은 몬드리안이 1920년 “인간은 과거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그린 반면 이제 새로운 정신을 통해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고 선언한 ‘신조형주의’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몬드리안의 선언은 유영국의 미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 당대 유행하던 추상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1950년대 그린 ‘바다에서’ ‘산’ ‘작품’ 연작을 보면 색채는 한국적인 질감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기본적인 선의 구분 등은 몬드리안의 영향이 느껴진다.

유영국의 ‘산’(1968). 빨강노랑 등 강렬한 원색을 바탕으로 삼각형의 단순한 조형미로 산을 표현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유영국은 1960년대부터 울진 산·바다의 원형적인 색감과 장대한 구도를 담아내는 데 몰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삼각형과 원 등 간단한 도형만으로 눈에 보이는 산·바다의 본질을 형상화한다. 전시는 당대의 전위예술을 접했던 엘리트예술인이 자신의 고향풍경이란 가장 향토적인 주제로 환원하는 과정을 촘촘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100여점 중 60여점은 개인소장가의 작품인 만큼 기존 전시에서 보기 어려웠던 작품이 많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내년 3월 29일부터 6월 25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으로 옮겨가 전시를 이어간다.

유영국의 ‘작품’(1988). 삼각형 등 단순한 조형으로 추상적인 산을 표현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유영국의 ‘작품’(1989)(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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