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건설경기 르포] 잔인했던 여름, 더 잔인한 가을

문닫는 업체, 1년새 6.5배 폭증
공사 수주? 1건도 못 딴 업체가 40% 부도 직전? 인부들 밥도 한끼로 줄여
연관 산업? 시멘트·철근도 불황 불똥
  • 등록 2006-09-08 오전 9:06:14

    수정 2006-09-08 오전 9:06:14

[조선일보 제공] “(경기가) 바닥에 붙어부렀어. 일꾼들도 이젠 잘 안 나와.”

지난 5일 오전 5시30분쯤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시장 인근 ‘근로자 대기소’. 4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문모(59) 소장 혼자 연방 담배를 빨고 있었다. 주로 건설 현장에 날품팔이 일꾼과 건설업체를 연결해 주는 이곳에는 일꾼이 하루에 10여 명도 나오지 않는다.

“나오면 뭘 혀. 1주일에 절반은 공치고 들어가는데…” 일당(잡부 기준)도 6만원에서 5만5000원으로 떨어졌다.

2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남악 신도시 건설, 아파트 개발 붐 등으로 건설 현장이 많아 업체마다 “사람 좀 구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집값 잡는다고 서민경제는 빵점이 돼부렀어.” 문 소장은 대기소 등록증을 반납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방 건설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에선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방 건설시장을 떠받쳤던 버팀목인 주택경기는 미분양이 5만5000가구로 1999년 이래 최다를 기록할 정도로 얼어붙었다. 그나마 지역 중소업체의 숨통을 틔워 주던 관청 발주 공사도 급감하고 있다. 올 상반기 건설 수주액은 44조3130억원으로 작년 동기(50조970억원)보다 6조원(11%) 줄었다. 지방의 감소 폭은 23%에 달해 타격이 더욱 컸다.



◆지역 중소 하청업체는 빈사상태=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 현장에서 간이식당(함바)을 운영하는 최모(48)씨. 그는 현장 하청업체가 떼어먹은 넉 달치 밥값 900만원을 아직도 못 받고 있다. 그는 “어느 날 몰래 직원들 데리고 현장을 떠나거나 부도 내고 잠적하는 업체 사장들이 늘면서 외상값이 쌓여만 간다”고 말했다. 하청업체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현장 인부들에게 제공하는 밥도 2끼에서 1끼로 줄이고 1끼는 라면으로 제공하는 업체도 있다고 최씨는 말했다.

최근 아파트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는 충북 청주시에서도 지역 중소업체는 죽을 맛이다. D건설 김모 사장은 “서울의 대형 업체가 공사를 싹쓸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건설인력종합지원센터 김두호 사무국장은 “대형 업체들은 기능인력, 자재, 금융은 물론 함바집까지 데리고 오기 때문에 지역경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진 폐업 6배나 늘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스로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현재 전국에서 폐업을 신청한 건설사는 3534개로 작년 같은 기간(469개)보다 6.5배쯤 늘었다. 대한건설협회 광주시회 강영순 사무처장은 “올 상반기 공사를 한 건도 못 딴 업체가 40%쯤 된다”면서 “1억~2억원짜리 공사만 수주해도 축하 전화를 받는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6년째 건설업을 하는 N사 김모(36) 사장은 “직원이 15명인데, 매달 3000만~4000만원씩 은행 빚으로 월급을 주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구 S건설은 작년까지 12곳이나 됐던 현장이 최근 4곳으로 줄어 직원을 30명으로 절반쯤 감축했다. 이 회사 문모 이사는 “10년 이상 건설 밥을 먹고 있지만 지금처럼 힘들었던 적은 없다”고 하소연했다

◆레미콘·시멘트 업계도 ‘휘청’= 건설경기 침체로 시멘트·레미콘·합판·보일러 등 연관 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올해 시멘트 예상 출하량은 4600만t으로, 2004년(5494만t)보다 900만t쯤 급감(急減)할 전망이다. 건축 공사에 들어가는 합판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합판업계에서는 올해 생산량이 작년(63만㎥)보다 10~20%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철근의 경우도 국내 7대 제강사의 하루 출하량이 2만∼2만5000t으로 작년보다 절반쯤 줄었다. 건설산업연구원 백성준 부연구위원은 “건실한 중소업체마저 도산하지 않도록 불합리한 규제는 빨리 풀고, 사회간접자본 예산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집중'
  • 사실은 인형?
  • 왕 무시~
  • 박결, 손 무슨 일?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