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공정위 제재 강화만 능사가 아니다

  • 등록 2017-09-28 오전 7:23:29

    수정 2017-09-28 오전 7:23:29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처럼 뉴스에 많이 노출된 적이 없는 것 같다. 특히 공정거래위원장이 누구인지 이렇게 관심을 많이 받은 적도 없다. 그래서인지 언론에서도 ‘김상조호’ 공정위 혹은 ‘김상조표’ 개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아마도 길가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공정위를 아느냐고 물으면 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이전보다는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무엇하는 기관인지 물으면 아마 재벌이나 갑질하는 대기업을 혼내주는 곳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이번 정부에서 ‘공정경제’가 강조되고 있고 특히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공정위를 강조하다 보니 공정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국회에서도 법위반 대기업과 갑질을 일삼는 사업주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공정거래 규제에 대해 제재만 강화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애당초 공정거래법은 등장하면서 곧바로 우리나라의 거래관행을 일시에 불법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예컨대 이젠 추억속의 장면에서나 찾을 수 있는 협정요금표를 떠올려보자. 물가관리를 위해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각종 협회를 통해 가격담합을 이끌어내고, 이를 회원사들이 지키도록 협회의 권한을 인정해 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1981년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서 협정요금준수라는 미덕(?)은 불법이 되어 버렸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공정위에 협정요금을 준수하지 않는 ‘악덕 상인(?)’을 고발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상담전화가 걸려왔었다. 심지어 문서로 신고를 한 정의로운 사업자도 있었는데, 이 경우엔 법위반을 인지한 것이 돼 조사를 할 수 밖에 없어 해당 협회를 담합으로 제재를 하곤 했다.

담합뿐만 아니라 하도급거래에서도 이런 일은 마찬가지였다. 1982년 12월 31일 제정되어 이듬해 4월 1일에 시행된 속칭 하도급고시에서 하도급대금은 목적물 수령일부터 60일 이내에 지급돼야 한다고 했는데, 당시 거래관행상 대기업의 경우에도 90일 만기어음이나 120일 만기어음을 대금으로 지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고시의 시행과 동시에 모두 범법자가 돼 버렸다. 비록 법에 맞추어 거래절차나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거래관행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 후로도 흔히 말하는 10대 재벌 소속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법규에 부합하는 거래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법규를 준수할 만하면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거나 기존 규제가 강화되는 바람에 계속 범법자 취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정도 규모의 대기업이 이런 지경이면 규모가 이에 못 미치는 대기업이나 중견,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법위반 사업자들을 옹호하거나 변명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거래법규의 특성이 공정한 거래질서를 위해 기존의 거래관행을 바꾸려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가 이 법을 제대로 준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고, 특히 회사의 규모나 수준에 따라 이 시간이나 역량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 소관법률을 위반하면 법률용어로 ‘시정명령’을 받게 되는데 말 그대로 법위반상태의 시정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공정위가 법위반 사업자(대부분은 회사다)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안에 따라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은 모두 강제성이 수반되는 행정처분으로서 이를 따르지 않으면 형사고발되는 것으로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물론 매우 중대한 위반으로서 바로 고발조치 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공정거래법규에 위반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법위반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라면 자율준수프로그램의 도입을 약속한다든가, 특정 업무 담당자에 대한 교육 혹은 업무 배제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흔하다. 제재가 필요한 경우에는 사업자가 다시는 법위반행위를 할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제재수준이 강하다. 우리는 흔히 법위반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지만, 막상 위반행위에 비해 제재수준은 낮아 재발방지에는 미흡하거나 위반 정도가 낮은데도 제재가 아닌 다른 수단을 활용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데에는 인색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 법규가 개선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 거래관행은 오랜 기간 형성된 것이고, 오래된 관행일수록 다른 관행과 연결돼 있어 바꾸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이다. ‘김상조표’ 개혁 목록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칼을 휘두르기 전에 공정거래법규의 특성이나 목적에 걸맞는 수단을 고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쌓여온 악습을 끊을 수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경제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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