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진의 Tour & Culture)다방과 찻집이 사라지고 있다

  • 등록 2008-11-17 오전 10:51:00

    수정 2008-11-17 오전 10:51:00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4,000원짜리 자장면을 먹고 4,500원짜리 커피를 마신다. 뭔가 이상하다. 점심 시간만 되면 길거리에 커다란 일회용 컵을 든 사람들이 행진을 한다. “커피 콩과 찻잎”이든, “별다방”이든 아니면 “일곱 마리 원숭이”이든 언제부턴가 낯선 이름, 낯선 모습의 카페가 한국 서울의 골목과 웬만한 빌딩의 일층들을 점령해 버렸다. 대학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칭 민족의 대학이라는 고려대 안과 인근에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신촌골은 이미 완전히 점령을 당한 모습이다.

언뜻 한국의 논두렁을 점령해 버린 황소개구리나 붉은귀거북, 브루길 생각이 난다. 이젠 누구도 “다방”이라거나 “찻집”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다방과 함께 다방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있다. 공간도 단어도 그리고 다방 문화와 그 문화와 함께 했던 우리의 모든 과거도 사라졌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버려야 할 구습이고 청산해야 할 과거였던 것만 같다. 마치 황소개구리와 베스 같은 이 외래 카페들의 점령이 정말 겁이 나는 것은 우리의 미래도 이미 사라져버린 것만 같기 때문이다.

다방 문화를 아시나요

다방이나 찻집이라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발음도 좋고 의미도 확실하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사라지고 있고, 말과 함께 다방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다방 문화란 무엇인가?

다방 문화에는 다방 마담, 레지 아가씨 같은 얄궂은 측면도 있었다. 대개 마담들은 긴 한복을 입었고 레지 아가씨들은 가능한 한 짧은 미니를 입곤 했다. 마담들은 다방에 들어서는 남자들에게는 아무나 보고 사장님이라고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레지 아가씨들은 진한 화장을 하고 쟁반을 든 채 조금 심하게 허리를 흔들고 지나다녔다. 그러면 주문을 한다. ”홍양 여기 커피 두 잔, 블랙으로……” 성희롱이라는 단어도 없던 그 당시, 나이든 중년 신사가 슬쩍 엉덩이를 쳐도 없던 일로 하고 지나던 때였다.
 
또 모닝 커피와 계란 반숙 같은 아마도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 메뉴도 있었다. 어릴 때 어떻게 하다가 어른들을 따라 다방에 가면 계란 반숙을 시켜주시곤 했다. 그런 델 가면 거의 언제나 금붕어가 헤엄치는 사각 어항도 있고, 난로도 있었다. 육각형 성냥통과 동전을 넣으면 그날의 운수가 나오는 큼직한 재떨이도 있었다. 이 풍경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져갔지만, 기억에는 생생하다. 어디 생활 박물관 같은 곳에라도 모아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사라진 다방 중에 고전 음악 다방이라는 것이 있었다. 대학교 앞이나 명동에도 있었다. 참 많이도 드나들며 집에 없는 고급 앰프로 명반을 듣곤 했다. 어쨌든 이제 모두 사라져간 옛 것들이다.

왜 다방은 사라져야만 했을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조금 심각한 질문일 수도 있다. 다방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방 문화도 함께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고 나아가 다방 문화와 함께 우리의 삶의 중요한 부분도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방은 상업적 공간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사람들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자 풍경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야기와 그 배경을 이루는 이 풍경에 민감하며 자연히 원하든 원치 않든 이 풍경을 오래 기억한다. 이 기억이 중요한 것이다. 이 기억은 공동체에 소속되어있다는 소속감과 유대감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한국 다방이 사라진 이유들 중 하나는 다방이 조용히 앉아 이것저것 생각을 좀 하고 혼자 책을 읽거나 아니면 멍하니 앉아있는 공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음악이 쾅쾅 울리고 상당수 다방들이 지하에 있던 탓에 곰팡이 냄새와 찌든 담배 냄새도 났다. 글을 쓸 수는 더더욱 없었다. 차 한잔 시켜놓고 각자 자신의 볼일을 볼 수 있는 대중적인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국 다방은 못했던 것이다.

급속한 경제 발전 탓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덕분에 골목들이 사라지면서 다방도 사라졌다. 골목이 있던 자리에 20층짜리 빌딩이 들어서고 일층에는 외래종들이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그 옆에는 24시간 편의점이 있다. 이 변화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골목이 사라지고 다방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어딜 가나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서 더욱 아쉽다. 그 책임의 반은 한국 다방 자체에게 있다. 고즈넉한 공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식 다방은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매일 찾아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 다방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전문가가 아니라 웃돈을 받고 넘길 생각만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파리의 카페들

카페 천국이라는 파리에도 30개가 넘는 외래종들이 들어섰다. 서울에 비하면 아직 적은 수이고 대부분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것들이긴 하다. 이 외래종들이 얼마나 견디어 낼지 자못 궁금하다. 파리 근교의 디즈니랜드가 토종 프랑스 테마공원인 아스테릭스에 밀린 적이 있듯이,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페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 파리 샤틀레 광장의 풍경
▲ 파리 중고서적 상인 부키니스트

샤틀레 파리 시립 극장 앞의 카페는 15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탁과 찻잔도 그대로였다. 창 밖으로 뵈는 나폴레옹 승전탑 주변의 풍경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센느 강변의 중고서적상들인 부키니스트들도 여전히 헌 책들을 팔고 있었다.

사르트르가 단골로 자주 드나들던 레되마고 카페에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앉아 히히덕거리고 있었고, 로통드 카페 앞의 발자크 상도 두터운 잠옷을 걸친 모습 그대로였다.

파리는 이렇게 해서 보존되고 있었다. 카페들 중 몇몇이 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를 알만도 했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탈고한 테이블,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탁자라고 쓰여진 글귀들이 거짓말만은 아닌 것이다. 실내 장식도 함부로 바꿀 수가 없어 주인 입장에서는 별로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손때 묻은 탁자나 의자는 적이 감동을 주곤 한다.
▲ 파리-카페-프랑세
▲ 파리-카페-노트르담

프랑스의 수많은 정치, 문화, 예술적 사건들은 카페에서 일어났다. 프랑스 대혁명도 그랬고, 인상주의도 그랬다. 추운 겨울 장작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몸을 녹이며 먹다 남은 포도주도 얻어 마시곤 했다. 전시회도 카페에서 열었다. 19세기말의 몽마르트르 화가들과 뒤늦게 이들과 합류한 반 고흐가 그랬다.
 
영화 <아멜리에> 나오는 허름한 몽마르트르의 카페는 파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카페다. 그러나 영화가 촬영된 이후로 유명세를 타서 재미를 봤다고 한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드나들던 카페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그 건물 그 자리에서 그냥 장사를 하고 있다.

파리 카페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갸르쏭으로 불리는 다방 종업원들인데, 대부분 흰 앞치마에 검은 색 조끼와 흰 셔츠를 입고 일을 한다. 하루 평균 12km를 걷는데, 서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무엇보다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 가끔씩 쟁반에 커피나 맥주잔을 올려놓고 달리기 시합을 해서 샹피옹(챔피언)을 뽑는 대회도 열곤 한다.
 
갸르쏭은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다방 종업원들은 대부분 남자들인데, 요즈음은 여자들도 일을 하곤 한다. 이상해서 쳐다보면 어깨를 씰룩하고 웃는다. 갸르쏭들은 맡은 구역이 따로 정해져 있다. 월급을 받고 팁은 전체적으로 모아 나누어 갖는다. 샹젤리제나 오페라 쪽의 갸르쏭들은 이 수입이 짭짤하다.

주택가에 다시 자리잡기 시작한 다방들

보도를 보면, 서울 주택가에 서서히 한국식 다방들이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신도시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넓은 의미의 강남에도 곳곳에서 카페 테라스나 정원 카페 등이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고려대 인근에도 커피 맛 자체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곳이 있다. 실내는 손을 봐도 단단히 봐야 할 정도로 형편 없다. 또 가끔 12시 이전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 학생들과 주인 마담이 된장찌개를 시켜 놓고 식사를 하는 바람에 기절초풍을 할 때도 있지만, 커피 맛은 참 괜찮다. 커피만 따로 봉지에 담아 팔기도 한다.
▲ 빈 예술사 박물관 내 카페
▲ 파리-카페-레되마고

거의 바닥이 보일 정도인 로마의 에스프레소, 아침에 크르와상과 함께 마시는 파리 카페의 카페올레, 빈 예술사 박물관 안의 초콜릿과 함께 마시는 카페…… 십 년, 이십 년 후에 가도 거의 그대로인 이 카페들은, 모르긴 몰라도 주인도 그대로일 것이다.

한 곳에서 오래 장사를 하고, 아버지가 드나들었고 조금 변하긴 했지만 아들도 대를 이어 드나드는 다방이 있으면 좋겠다 싶지만, 한국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것도 국민소득과 관계된 현상이니 강제할 수도 없다. 10년, 20년 계속 장사를 하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줄 수도 없다. 어떻게 토종 개구리나 민물고기를 보호할 방법이 없을까? 파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페 싸움의 결과가 궁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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