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만약 '미생'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더라면

  • 등록 2014-10-28 오전 8:54:43

    수정 2014-10-28 오전 8:54:43

[이데일리 고규대 문화부 부장] 장면 하나. 장그래는 인턴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이용을 당한다. 말투마저 어리숙하다. 장면 둘. 안영이는 외국에도 능통하다. 돈 많은 집 딸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타고난 노력파였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미생’의 주요 장면이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미생’은 바둑이 인생의 전부였던 장그래(임시완 분)가 프로입단에 실패한 후 종합무역상사 인턴으로 들어간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IT와 서비스 기업이 주목받는 요즘, 전 세계를 뛰어다닌 종합상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치열한 삶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 젊은 층을 넘어서 중장년층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미생’은 기존 지상파 드라마와 다른 ‘기승전결’을 지향한다. 웹툰 원작자인 윤태호는 최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분들이 지상파에서 ‘미생’을 방송하면 러브라인이 추가되기 때문에 안된다는 말을 했다. 러브라인 보다는 뉘앙스 정도만 있는 드라마로 갔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실제로 지상파 측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 포기를 못하더라”고 밝혔다. 앞서 설명한 장면이 케이블채널이 아닌 지상파에 방영됐더라면 어리숙하던 장그래가 갑자기 능수능란하게 프리젠테이션을 마치거나, 정체불명의 안영이는 알고보니 사장의 딸이라는 식으로 진행되는 ‘막장’을 탈지 모른다.

‘미생’엔 아직 흔한 러브라인이 없다. 직장 내 동료의 사랑도 선후배의 사랑도 찾기 어렵다. 주인공인 장그래와 안영이가 인턴 동료지만 연인 같은 연인 아닌 연인 듯 ‘썸’ 타는 정도로만 묘사된다. 또 ‘낙하산’ 인턴으로 입사한 사원이 알고보니 사장의 딸이었거나, 그 딸이 동료 남자 인턴과 사랑에 빠졌는데 뒤늦게 이복남매였다는 설정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장그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출발하고 엮이지만 50대 과장부터 20대 인턴 사원까지 모든 캐릭터에 시선이 분산된다.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3년차 직장인, 만년 과장까지 ‘내 이야기’처럼 공감하며 ‘미생’에 빠지는 이유다.

요즘 국내 지상파 드라마는 시청률에, 한류에 눈이 멀어 ‘막장’ 아니면 멜로로 편중돼 있다. 젊은 시청층은 TV라는 플랫폼을 떠나 인터넷, VOD 등으로 소비하고 있다. 화제가 되는 드라마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가 같지 않은 게 그 결과로 나타난다. 결국 시청률은 중장년층의 채널 선택권을 반영하는 수치가 됐고 작품의 인기를 가늠하는 정확한 지표로 신뢰도를 잃고 있다. 그럼에도 지상파는 불과 몇해전은 고사하고 10여 년 드라마와 다름없는 설정으로 연연해하고 있다. ‘닥터 이방인’ 등으로 유명한 진혁 PD의 조언은 이 때 유효하다. 진혁 PD는 “일본 시장을 노린 드라마만에 집중하거나 중국 진출을 염두한 포석에 신경 쓰는 게 한국 드라마 시장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천편일률적 내용을 가진 드라마를 양성하거나나 자칫 중국의 하청업체에 전락하는 왜곡된 제작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드라마의 유행은 빠르게 변한다. 멜로물이 휩쓸다가 사극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지난해처럼 수사극, 스릴러 드라마 등이 안방극장을 수놓던 때도 있었다. 변하지 않는 건, 바로 드라마 기획의 힘이다. ‘미생’과 함께 주목 받고 있는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은 수사물임에도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이를 되살리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이나 마음의 병은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사랑을 되짚어보는 ‘괜찮아 사랑이야’ 등 최근 드라마도 기획력의 힘이 시청자에게 어떤 공명을 남기는지 증명했다. ‘미생’은 우리 드라마가 가야할 단면을 보여준다. 결국, 드라마는 ‘기획의 힘’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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