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원 칼럼]노무현이 왼쪽 깜박이 켜고 우회전 한 까닭

  • 등록 2017-04-07 오전 7:20:12

    수정 2017-04-07 오전 8:14:05

문 안 재벌정책 큰 차이없어

중도층 잡기 위한 선거전략

진보 뿌리 둔 노무현 대통령

경제정책은 보수기조 유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층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경제정책에서는 중도 내지는 보수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진보적인 색깔을 드러낸 복지 분야 등 사회정책과는 차이가 있었다. 보수 언론에 의해 좌파정권이란 낙인이 찍혔으면서도 지지층으로부터 왼쪽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법인세 인하(2003년),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2007년)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정치적 배경과 소신 보다 국익을 우선 고려했다. 재벌개혁도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7월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시책 점검회의에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재벌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해서 정부가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특유의 수사로 인정한 것이다. 해외순방에서 돌아왔을 땐 대기업이 자랑스럽다고 얘기하곤 했다. 뿌리는 진보지만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에 눈감을 수 없었다.

선거공학적으로 보면 재벌개혁은 대표적인 진보 정책 슬로건이다. 대기업을 양극화·빈부격차의 원흉이자,‘만악의 근원’으로 간단히 몰아갈 수 있어서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질수록 중도층은 진보적 정책을 선호한다. 유럽국가들이 그런 과정을 거쳤다. 좌성향이든 우성향이든 중도층 표심을 잡아야 하는 후보자에게서 현실 논리를 감안한 재벌개혁방안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반(反)기업 정서가 만연한 상황에서 선명한 재벌정책은 표를 모으기에 안성맞춤이다.

양강구도를 형성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재벌정책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용만 봐서는 누가 왼쪽에 서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 제한 혹은 금지는 기업인을 ‘사악한 존재’로 규정한 듯해 섬뜩할 정도다.

문 후보는 4대 재벌을 집중 개혁대상으로 꼽았다. 안 후보는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도입등을 망라했다. 안 후보는 공약뿐 아니라 수사에서도 재벌 개혁에 대한 강한 집념을 드러냈다. 지난 달 광주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서 “삼성그룹이 저한테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느냐. 저는 겁나는 게 없다. 거기서 뭐 받은 것도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대 시장기능을 강화하고 경쟁을 촉진해 기업의 투자와 경영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후보들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4차 산업만 강조할 뿐 기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선 입을 닫아버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왼쪽으로 기울어진 선거판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대기업들은 쏟아져 나올 규제와의 전쟁을 치러야할 것 같다. 최근 대한상의가 ‘시장주도 기업지배구조 개편’ 등을 포함한 경제계 제언을 정치권에 전달한 것만 봐도 선거 후폭풍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다.

재벌정책을 포함한 모든 경제정책은 과거의 발전과정과 역사성 등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한다. 하이에크가 지적했듯이 경제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란 어렵다. 경제정책은 퍼즐을 푸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게임의 승률을 정확히 계산해 정책을 폈다고 해서 ‘퍼센티지 플레이어’로 불렸다. 그는 만약 연준의 판단이 틀릴 때 경제는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가를 항상 물었다고 한다. 실패했을 때 대가가 클 것 같으면 설사 성공확률이 50%가 넘는 정책이라도 피했다고 한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대선 공약 때 제시한 수사(공약)에 갇혀 완장을 차고 대기업을 압박하면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줄일 것이다. 시장의 보복은 그렇게 시작된다. 정부는 더이상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 국가가 해야할 일은 운동장을 평평하게 관리하는데 그쳐야 한다.

[이데일리 이익원 총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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