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진로의 비결 5000개 오크통 살펴보니

[이천=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층층으로 쌓인 5000여 개의 오크통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크통에는 ‘번호 4575, 최초주입 1999년 4월 24일’ 등 문구가 붙어 있다. 긴 세월을 견디느라 색이 바랬고 통을 감싸고 있는 철 테두리에도 녹이 슬었다. 공기는 무겁고 차갑다. 은은한 나무 향에 알코올이 섞인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10℃의 온도에 서늘함이 옷을 파고든다. 마치 고목으로 우거진 숲 안에 있는 듯하다.

이천공장의 목통숙성실 (사진=하이트진로)

지난 11일 방문한 하이트진로(000080) 이천공장의 오크통 숙성실의 모습이다. 이곳은 ‘일품진로’ 등 하이트진로의 증류 소주 생산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오크통 속에 든 것이 바로 소주 원액이다.

‘증류 소주’는 주정에 첨가물과 물을 넣는 ‘희석 소주’와 근본부터 다르다. 곡물 등 원료를 발효해 증류 원액을 얻은 후 이를 숙성해 만든다. 이후 필요에 따라 물을 섞는다. 원료의 풍미가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제조 과정은 배로 힘들다. 시간과 비용 등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한다. 숙성기간이 늘어날수록 제품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지난해 9월 8000병 한정 상품으로 선보인 일품진로 2023년산은 현재 3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이영규 하이트진로 양조팀 증류주제조파트장은 “목통에 저장된 증류원액이 나무 안에 있는 셀룰로즈와 반응해 흔히 아는 위스키와 같은 술이 된다”며 “색깔도 노란색 황금빛으로 변화하고 기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풍부해진다”고 설명했다.

이 오크통들은 한 개에 수십만원에 이른다. 미국에서 버번 위스키를 담아 숙성했던 통이라서다. 중고 오크통을 사용하는 이유는 부드럽고 온화한 맛을 내는 데 적합해서다. 새 오크통에 담아 숙성한 술은 생나무 향이 강해 떫은맛이 생길 수 있다. 마치 녹차 티와 같은 원리다. 한 번 우려낸 후 바로 마시면 쓴맛을 느끼는 것과 같다. 오크통이 곧 술맛을 결정하는 셈이다.

(사진=하이트진로)

오크통 한 개의 용량은 200ℓ다. 그러나 보통 180ℓ만 채운다. 꽉 차면 통의 마개 부분의 헝겊에 닿아 증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크통의 미세한 틈으로 자연 증발은 일어난다. 숙성실의 오묘한 냄새도 이 때문이다. 좋은 숙성을 위해선 온도 조절이 관건이다.

이 파트장은 “온도가 올라가면 목통 안의 술에 포함된 에탄올과 휘발성분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어 여름에도 낮은 온도를 유지하려고 한다”며 “자연 휘발율은 연평균 약 2% 정도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1만ℓ에 달하는 대형 오크통 수십개도 구비했다. 높이만 4m에 이른다. 이는 프랑스에서 수입한 제품이다. 하이트진로는 이 대형 오크통에 수년째 소주를 숙성 중이다. 아직 이 원액을 사용해 출시한 제품은 없다. 이 파트장은 “같은 참나무통이라고 해도 유럽, 미국 등 원산지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다”며 “지속적인 숙성과 연구 개발을 통해 상품화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날 직접 일품진로 23년산을 시음해 볼 기회도 있었다.

오크통에서 묻어나온 은은한 황금빛이 인상적이었다. 코끝에서 맴도는 특유의 곡물 향도 특징이다. 도수가 높은 독주지만 쓴맛보다 부드러웠다. 참나무향이 살아 있어 깔끔한 뒷맛이 느껴졌다. 일반 위스키 제품처럼 ‘온더락’이나 ‘하이볼’ 등으로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기존 접했던 일반 증류식 소주와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하이트진로는 증류주 생산시설을 더욱 확대할 뿐만 아니라 제품군도 늘린다는 구상이다. 이 파트장은 “현재 1~24년까지 다양한 숙성 오크통을 보유하고 있다”며 “올해도 24년산 일품진로 제품이 출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숙성 원액을 활용한 제품화를 항상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품진로 23년산 제품 (사진=한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