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프레스 프렌들리’라는 말도 있다. 기자실 통폐합 등 지난 정부의 언론정책을 원상태로 환원시키겠다는 소위 친언론 정책을 펴 가겠다는 말인데, 야권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언론 장악 음모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여파로 임명된 지 3개월여 밖에 안 된 청와대 비서진들이 전면 개편되었다. 이번에는 지역, 출신대학 안배는 물론 보유 재산까지 철저히 고려한 “피플(국민 정서) 프렌들리”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어느 야당에서는 이번 인적 쇄신이 아직도 “서민 프렌들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혹평하고 있다.
이렇듯, 난데 없이 요즘 “프렌들리”란 용어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난무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홍보 프렌들리”는 없을까. 물론 있다. 지금부터 필자가 대우그룹 근무 시절 성공리에 펼친 “CEO 親홍보” 작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때는 1990년대 중반의 어느 추운 겨울 날이었다. 얼마 전부터 그룹 사장단 이동 소문이 모락모락 나더니, 이윽고 대규모 사장단 인사가 발표되었다. 명단에는 필자가 소속된 (주)대우의 대표이사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새로 취임할 CEO에 대한 내부 평이 녹록하지 않았다. 사내 정보망을 통해 들은 얘기로는 금융 기관 출신으로 매사에 철저하고 깐깐하신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특히, 평소 그룹 홍보실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치 못해 앞으로 모시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당시 홍보팀장이던 필자 또한 신경이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까지와 같이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면 무엇인 문제인가?’ 하며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지냈다.
사장실에는 이미 몇몇 임원들이 들어가 있다고 비서가 전한다. 그렇지만 다음 날 조간 신문에 보도되기 위해서는 언론 배포 시점을 늦출 수는 없었다. 해서 필자는 비서에게 “급한 결재 사항이라고 여쭈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윽고, 들어가라는 비서의 신호가 보인다. 그런데 꾸중 맞은 어린애 표정이라 할까 여비서의 안색이 별로였다.
노크를 한 후 사장실로 들어가 보니 응접 테이블에 사장과 임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무언가에 대해 대화 중이었다. 중간 간부 직원 한 명의 출현을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모름지기 대기업 홍보팀장이라면 어느 정도의 내공을 보유하고 있다. 거의 매일 막강한 언론을 상대로 홍보전쟁(?)을 치르느라 산전수전 다 경험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예의 상 대화의 중단을 잠시 기다렸다가 말문을 열었다.
“사장님! 결재사항이 있습니다.”라고 결재판을 불쑥 들이 밀었다. 임원들이 눈 길이 일제히 내게 쏟아졌고 일순 사장의 미간이 찌푸려 진다. “이게 뭔가?” 하며 결재판에 꽂혀 있는 보도자료를 들여다 본다. 이윽고 나온 한마디. “아니, 도대체 이걸 왜 언론에 발표하려 하는 거지?” “회사 내부의 조직 개편도 언론에 발표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나?” 일순 당혹감이 밀려왔다. 임원들의 ‘참 안됐다’는 표정이 언뜻 보인다. 필자는 어차피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이라고 생각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답변을 했다.
사장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사장의 목소리가 얼핏 들린다. “난 말이야, 우리나라 언론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아. 그리고 홍보실 직원들도 마찬가지야. 맨날 기자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놀면서 흥청망청 예산만 낭비하지 않아?”
그는 유럽의 금융 중심지에서 10여 년을 주재하며 그룹의 국제 금융을 총괄하던 분이었다. ‘어이쿠, 이제 앞으로 고달픈 회사생활이 시작되겠구나’ 이제부터 신임 CEO에 대한 언론 홍보 길들이기 즉, ‘홍보 프렌들리 작전’이 시작되었다.
(필자 주: 다음 주에 “홍보 프렌들리” 작전 (하) 가 게재됩니다.)
문기환 새턴PR컨설팅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