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아파트 싱크대에 숨겨진 268만원의 진실은

[리뷰]연극 '집집: 소나타 하우스'
'빽'으로 임대아파트 입주한 주인공
과거와 현재 오가며 '집'의 의미 질문
생생한 부동산 이야기로 몰입도 높여
  • 등록 2021-09-10 오전 9:59:49

    수정 2021-09-11 오전 12:54:59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때 난지도였던, 지금은 하늘공원으로 불리는 상암동 일대가 멀리 보이는 서울 외곽의 한 임대아파트.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 연미진이 603호에 입주한다. 어린이집 보육 교사로 일하는 미진은 임대아파트 입주 자격이 없지만, 아파트 관리소장의 조카인 친구의 ‘빽’으로 이곳에 입주했다.

어떻게든 집을 구했다는 안도도 잠시, 이내 이웃들은 미진의 입주 조건을 의심하며 미진을 불안케 한다. 예비신랑인 성근에게 ‘빽’으로 임대아파트를 구한 사실도 감춰야 해 마음도 편치 못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진은 낡은 싱크대를 고치다 바닥 깊숙히 숨겨져 있던 검은 봉투를 하나 발견한다. 봉투 안에 들은 것은 268만원. 오래된 1만원권을 고이 모아둔 이 봉투가 왜 이곳에 감춰져 있는 것일까.

연극 ‘집집: 소나타 하우스’의 한 장면(사진=극단 해인, 김솔)
지난 2일 개막한 연극 ‘집집: 하우스 소나타’는 최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의식주 중 하나지만, 이제는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작품은 자본주의의 욕망으로 변질돼 가고 있는 한국 사회 속 집의 가치를 보여줌과 동시에 집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싱크대 밑에서 발견된 268만원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연극은 2002년 박정금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난지도에서 무허가 집을 짓고 살던 정금은 교회 집사 성현숙의 도움으로 새로 건설된 임대아파트에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입주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정금은 빌딩 청소부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매달 받는 돈이 소득으로 잡힐까 안절부절하기 시작한다. 싱크대 밑에 차곡차곡 돈을 숨겨 놓은 이유다.

2002년의 정금도, 2020년의 미진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만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아주 소박한 꿈이다. 그러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제집 마련도 쉽지 않고, 임대아파트마저 온갖 조건을 갖춰야만 입주 가능한 현실에서 두 사람의 꿈은 점점 짓밟히고 만다. 정금은 아들이 허리를 다쳐 장애로 산재등급을 받자, 아들이 부양자격을 잃어 임대아파트 입주 요건을 지킬 수 있게 됐다며 “잘했다”고 말한다. ‘빽’으로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사실을 알게 된 성근에게 오히려 화를 내는 미진의 모습 또한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연극 ‘집집: 소나타 하우스’의 한 장면(사진=극단 해인, 김솔)
극본을 쓴 한현주 작가는 부동산에 대한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이번 희곡을 완성시켰다. 아파트 무순위 청약을 뜻하는 ‘줍줍’,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고양 창릉지구 등 부동산과 관련한 생생한 에피소드들이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무거운 현실을 다룬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생생한 일상 연기, 부동산 유튜브 채널을 패러디한 ‘집집TV’ 장면 등이 가벼운 웃음과 함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이것은 열심히 산 흔적일까, 아니면 욕심의 흔적일까.” 268만원을 놓고 미진이 내뱉는 대사는 자본주의의 탐욕이 어떻게 인간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며 긴 여운을 남긴다. 극단 해인의 이양구 연출이 연출을 맡았다. 배우 박명신, 이윤화가 정금 역에 더블 캐스팅됐고, 이나리가 미진 역을 맡는다. 배우 최요한, 이선주, 조형래, 최설화, 이은정, 문희정, 정혜지, 호종민, 우범진 등이 출연한다. 오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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