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경영)⑮책임 불분명하면 정책실패 악순환

정책 실패, 정부조직 갈등구조 탓
정부조직 권한·책임 구조 재설계돼야
  • 등록 2006-10-18 오후 12:10:00

    수정 2006-10-18 오후 12:10:00

▲ 박개성 대표

[이데일리] 최근 정부의 정책 실패 사례가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대북 정책을 비롯해 부동산 정책, 고용 정책 등도 이미 도마에 올랐다. 외환위기 때 쏟아졌던 정부에 대한 비난을 연상하게 한다.

물론 정부의 대응은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탓`, `야당 탓`을 하며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려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참작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지 않지만 대체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비춰진다.

잇따른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부적절한 인사 못지 않게 정부조직 내 갈등구조 증폭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정부 내 개별 조직들은 정책 달성을 위해 서로 협조해야 하지만 자기 권한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경쟁을 불사한다. 특히 유사·중복되는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권한은 가져오되, 책임은 회피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현재 정부 조직 내 갈등구조가 증폭된 실마리를 찾아보자.

첫째, 청와대와 총리실에 설치된 많은 위원회는 부처의 고유 업무를 간섭한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해당 부처의 책임성도 저해시켰다. 관련 위원회에 소속된 분들의 전문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기획만 하고 집행은 부처로 넘기는 현 방식은 갈등을 증폭시켜 온 부인할 수 없는 요인이다.

청와대나 총리실이 주도적으로 정책을 수립했으니 해당 부처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일 리 만무하다. 집행이 지연돼 정책 타이밍을 놓치거나 방어적으로 정책이 수행되곤 한다. 과거 의약분업 사례가 중앙부처 공무원에게 이같은 지혜를 터득하게 했다. 당시 기획은 청와대가, 책임은 보건복지부가 나눠 가졌다.

둘째, 중복된 평가로 인해 정부와 산하기관 간 갈등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은 산하기관을 통해서 집행된다. 하지만 이 둘은 오래전부터 미묘한 갈등관계에 있어왔다. 중앙정부 공무원들은 "성과도 없으면서 (나보다) 급여가 많다"고 산하기관 임직원을 타박한다.

산하기관 임직원들은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나 수행방식마저 간섭하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하겠다"고 화살을 돌린다. 이번 정부 출범 후 혁신평가를 비롯해 각종 평가가 추가되거나 강화됐다. 산하기관들은 공기업 평가나 산하기관 평가, 혁신 평가, 부처의 평가, 감사원 감사, 국정감사 등 온갖 평가에 허덕인다.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게 무리가 아니다.

때문에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실효성 없는 제도를 형식적으로 도입하는가 하면 불필요한 행사들도 난무한다. 일자리 창출 같은 그럴 듯한 구실로 인력을 증원하는 식의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반면 고유 사업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수적이지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면 회피하거나 미룬다. 

다양한 시각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지적들 가운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헷갈려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금 공기업이나 산하기관들은 온갖 경영기법의 실험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범정부적 차원의 기획 기능이나 부처간 조정 기능을 강화하거나 산하기관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려는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중앙부처와 산하기관의 열정과 책임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구조 재설계가 요구된다.

첫째, 중복 기능을 조정해 부처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번 정부는 정부의 생산성을 조직의 문제보다는 일하는 방식의 문제로 보고 조직의 재설계나 인력 조정을 경원시했다. 그러나 이는 서로 분리해서 봐서는 안된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에 중점을 두더라도 조직의 형태나 규모와 같은 변수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총리실과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 등 부처를 관리하는 기능이 정비돼야 하고, 중앙부처 간에 연관되거나 중복된 기능은 조정돼야 한다.

둘째, 부처와 산하기관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정의해 갈등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중앙정부에 총액예산제를 도입하는 것처럼 산하기관에도 사업 단위에서 예산 자율 편성권을 확대해야 한다.

아직도 부처에서는 과거와 동일한 행태로 산하기관 예산을 관리하고 있다. 최근 기획예산처가 산하기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높이기 위해 법안을 제정하려 하는데 이런 노력은 바람직하다.

다만, 임원의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인 것이나 사장이나 임원의 연임을 1년 단위로 규정한 것은 신중하게 재고돼야 한다. 이는 중앙부처에 대한 의존을 높이고, 책임성을 낮춰 현 갈등구조를 오히려 증폭시킬 뿐이다.

산하기관이 정부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정책 이벤트를 하는 1년짜리 프로젝트 회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연임된 사례가 극히 없었던 실상을 고려하면 산하기관들은 3년 단임의 사장과 3년 단임의 임원들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1년 동안 최고경영자로 적응하다가 이후 계획을 세워서 예산에 반영하면 마지막 해가 되고 퇴임을 맞게 된다.

청와대와 총리실, 각 위원회와 중앙부처, 중앙부처간의 역할 분담과 책임성이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장관의 임기를 2년 정도는 보장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언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내 조직간 갈등은 증폭되고, 책임은 서로 회피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특정 정책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명확하게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없다면 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떨어지고, 정책의 실패는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박개성 엘리오&컴퍼니 대표(elio@elio.co.kr)

-現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자문위원
-現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정책 자문위원
-現 가립회계법인 대표이사 (CPA)
-現 한국고용정보원 감사
-前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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