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형광 펜을 칠해 놓은 듯 선명한 하늘, 손에 잡힐 듯 입체감이 분명한 구름. 바람은 실크처럼 부드럽게 몸을 감싸고,
모든 것이 청명하게 다가오는 지금. 우리는 가을의 문턱을 막 넘었습니다. 금방 가버릴 초가을 날이 아깝습니다.
주말매거진이 가을의 초입에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 3가지를 제안합니다. 初·秋·三·樂!
1 코스모스 꽃길 걷기
싸한 가을 바람이 밖으로 나가자고 옷깃을 잡아 끈다. 가을날, 꽃길을 걷는 맛이란. 가을 꽃의 대표주자는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8장 꽃잎이 너무 뻔해서 시시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흔한 꽃도 스케일이 크면 얘기가 다르다. 여행작가 최미선씨가 “지금까지 가본 코스모스 꽃길 중 최고”라고 꼽는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한강시민공원 코스모스 꽃밭을 소개한다.
2 영주로 떠난 사과여행
선득한 아침과 여전히 쨍한 낮. 사과에게 큰 일교차는 비타민이다. 태백산과 소백산이 갈라지는 곳에 들어앉은 경북 영주. 골짜기 사이사이에서 연간 전국 사과의 13%인 5만5000t이 생산되는 전국 최대 사과 산지다. 비가 적고 해발 고도가 높아 풍부한 일조량이 영주 사과의 당도를 높인다. 혹서와 맹추위가 오고 가는 북쪽 지방 사람들의 기질이 단단하듯, 사과도 마찬가지다. 큰 온도 차이에 오그라들었다 펴졌다를 반복할 수록 육질이 더욱 단단해져 사각사각거리는 맛이 더욱 좋아진다.
햇 사과를 직접 따보기 위해 22개 농가가 모여 공동 재배하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임곡리 부석자연작목반을 찾았다. 부석사와 5분 거리로 가까운 부석작목반에서 재배되는 사과는 이름도 ‘뜬바우골(浮石)사과’다.
어른 키보다 훌쩍 큰 사과나무가 오른쪽, 왼쪽에 끝없이 펼쳐졌다. 초록 잎 사이사이로 가지 중간에도 끝에도 주먹만한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사과 무게를 견디지 못한 가지가 바닥까지 닿았다. 햇빛을 잔뜩 받은 꼭대기 사과는 선홍빛이다.
“엄지 손가락으로 꼭지를 잡고 똑 부러뜨려요. 그냥 잡아당기면 꽃눈까지 다 떨어지니까” 작목반 총무 이운형(42)씨가 사다리를 놓아주면서 사과따기 요령을 일러줬다. 붉은 빛에 손을 델 것만 같았다. 오른 손으로 움켜쥐고 꼭지를 살짝 비틀었다. 똑, 소리를 내며 떨어진 사과 꼭지 끝에 투명한 수액이 반짝인다. 바지춤에 썩썩 문질러 닦았더니 반질반질 광이 난다. 와삭, 한입 베어 물었다. 이 사이사이로 단물이 스며들었다. 그것도 신맛과 어울려 질리지 않는 천연 꿀물이다. 콧속엔 아릿한 사과향이 감돌았다.
3. 대하 시즌 돌입
가을 식도락계의 수퍼스타, 대하가 돌아왔다. 자연산 대하 최대 집산지인 충남 태안군 안면도 백사장항에는 지난달 말부터 서해바다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대하가 들어오고 있다. 충남 홍성군 남당항에서도 탱탱한 자연산·양식 대하가 펄펄 뛰어오르고 있다.
대하가 가을 진미로 손꼽히는 건 필수아미노산 성분인 ‘글리신’ 함유량이 최고조에 오르면서 새우 특유의 감칠맛도 절정에서 헐떡대기 때문. 이때 대하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고 할 만큼 뛰어난 ‘스타성’을 발휘한다.
그리고 아, 대하회(일명 ‘오도리’). 살아서 펄떡대는 새우의 껍데기를 벗기고 오독오독한 속살을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며 혀에 배어드는 진득한 단맛. 대하는 정말 사랑 받을 수 밖에 없다. 스타가 돌아왔으니 컴백 무대가 없을 리 없다. 대하 크기와 맛이 절정에 이르는 이달 하순부터 오는 10월 말까지, 남당항과 백사장항에서는 대하축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