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길령천 약수… 성곽 안에 있는 물다운 물

자연석 성곽 안의 약수터
성문 열리면 주민들 찾아와 물도 마시고 체조도 해
  • 등록 2009-03-19 오후 1:47:00

    수정 2009-03-19 오후 1:47:00

[조선일보 제공] 서울에서 온 중년 여성 셋이 고창읍성(高敞邑城) 성곽을 돌고 있었다. 앞서 가던 둘이 멈추더니 뒤처진 친구를 기다린다. 뒤따르던 여성은 넓적한 돌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어머, 그냥 돌기도 힘든데 웬 돌멩이를 머리에 이고 걸어?"

"원래 이렇게 하는 거래."

"그래, 아까 성문 옆 성곽 시작하는 지점에 푯말 있잖아. 거기 써 있더라. '윤달에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고."

"그래? 그럼 네 바퀴 돌면 어떻게 될까?"

셋은 여고생들처럼 "까르륵" 웃더니 성곽 밟기를 계속한다.

▲ 고색창연한 성곽이 초현대적 설치미술작품으로 변신했다. 고창읍성이 야간 조명을 받아 빛난다. / 조선영상미디어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고창읍성은 '답성(踏城)놀이', 그러니까 성곽 밟기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드물게 원형이 잘 보존된 자연석 성곽이다. 북문(北門) 옆 안내판에는 '단종원년(1453년) 왜침(倭侵)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이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성곽은 높이가 4~6m이고 둘레가 1684m이다. 성곽 위를 한 바퀴 돌면 약 1.7㎞, 두 바퀴면 3.4㎞, 세 바퀴면 5.1㎞를 걷는 셈이니 운동량이 꽤 된다. 무거운 돌까지 머리에 인다니, 극락승천까지는 장담 못해도 웬만한 다릿병 예방과 무병장수에는 충분히 효과를 보지 않겠는가.
▲ 고창읍성 길령천(吉靈泉). 원래 수량이 그리 풍부하지 않은데 최근 더욱 줄었다.

고창읍성에는 답성놀이 말고도 건강에 좋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물이다. 북문을 들어서 잠시 직진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약수터'란 갈색 안내판이 보인다. 계단 위로 돌을 쌓아 고대(古代) 무덤처럼 만든 정사각형 공간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니 맞은편 석벽 머릿돌에 세로로 새겨진 한자(漢字) 셋이 보인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며 읽어보았다. '길(吉) 영(靈) 천(泉)'. '길하고 신령한 샘'이란 뜻이다.

길령천은 발견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예전엔 샘물이 존재하는지도 잘 몰랐다. 고창읍성이 황폐해지고 허물어지면서 길령천도 땅속에 묻혀 있었다. 읍성을 1976년 발굴 복원하면서 길령천이라고 암각된 머릿돌을 발견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샘터와 수맥이 확인됐다. 고창읍성관리사무소에서 7년을 일한 송영래 고창문화원 원장은 "'동국여지승람'에는 고창읍성 안에 삼지사천(三池四川), 그러니까 연못 셋과 샘 넷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영(靈) 자가 붙는 샘은 일년에 한두 차례 분수처럼 넘쳐 흐르거나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거나 하는 '영험함'을 지녔다고 한다. 송 원장은 "(길령천은) 옛날부터 흘러내려온 이름이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전설도 없다"며 과장과 허풍을 경계했다. "물은 상당히 좋은 물이랍니다. 물론 그냥 마시기 좋은 생수로서 말이에요. 그냥 약수다 그런 뜻이에요."

물맛은 나쁘지 않다. 입술에 닿은 물은 미지근하지 않지만 너무 차지도 않다. 마시기 딱 알맞게 시원하다. 입에 들어온 물은 무겁지 않고 상쾌하고 약한 단맛이 감돈다. 탄산이 보글거리거나 철분이 시뻘겋게 보여서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마시고 밥 먹고 마시고 목 마를 때 마시면 딱 알맞을, 물다운 물이다.

그래서인지 길령천은 고창 주민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진 않지만 친근하고 편한 약수터로 사랑받는다. 고창읍성관리사무소 직원 이인철씨는 "새벽 4시면 성문을 여는데, 5시면 주민들이 물을 받으러 온다"고 했다. 고창읍성 자체가 주민들의 문화센터 겸 헬스센터 겸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다섯 시 반이면 주민들이 성곽 안 공터에서 체조도 하고 에어로빅도 해요."

이인철씨와 대화를 하던 중, 성곽을 돌던 여성들의 의문이 떠올랐다.

"성곽을 네 바퀴 돌면 어떻게 되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던데요?"

"농담처럼 하는 말인데, 우리(고창 주민들)는 '네 바퀴 돌면 (그동안 돌았던 게 모두 무효가 돼) 다시 돌아야 한다'고 하죠."

고창 여행 정보

고창읍성_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연다. 성문 앞 매화가 이미 하얗게 발갛게 피었고, 약수터 앞 목련이 언제라도 꽃망울 터뜨릴 태세다. 4월이면 벚꽃과 개나리,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군인 600원, 아동 400원. 주차비 승용차 1500원. 고창읍성 관광안내소(063-560-2710)에 미리 부탁하면 무료로 안내·해설해준다. 성문 바로 앞 초가집은 신재효 고택(古宅)이다.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한 신재효가 철종 1년(1850년) 이 집을 짓고 1884년까지 살면서 후학을 양성했다. 고택 뒤로 판소리박물관(063-560-2761)이 있다.
 
▲ 수령이 정무를 보던 청사인 동헌(東軒). ‘ 백성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平近堂)이란 현판 건물 정면에 걸려 있다. 1987년 발굴조사를 거쳐 1988년 본래 모습대로 복원됐다.


선운사·청보리밭_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한, 1500년 고찰(古刹)이다. 봄이면 만발하는 벚꽃이 수행에 방해되진 않을까 걱정될 만큼 요염하다. 입장료 어른 2500원. 4월 18일부터 학원관광농장(063-564-9897, www.borinara.co.kr)을 중심으로 '청보리밭축제'가 고창군 전역에서 펼쳐진다.
▲ 풍천장어 양념구이(앞)와 소금구이.
고창 하면 장어이고, 장어 하면 고창이다. 선운사 부근 장수강 하류는 바닷물 염도가 높아 장어 맛이 좋았다. 선운사 올라가는 길목을 따라 수십여 장어집이 늘어섰다. 자연산은 찾기 어렵고 대개 양식산을 쓴다.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두 가지가 있고, 대개 1인분 1만8000원 받는다. 신덕식당(063-562-1533), 동백정(063-562-1560)이 오래됐다. 고창읍성 근처에서는 용궁회관(063-564-1331·고창읍 월곡리 155-1)과 우진갯벌장어(063-564-0101·고창읍 월곡리 283-1)가 괜찮다. 두 집은 양식장어를 갯벌에 풀어놓고 6개월 동안 사료를 먹이지 않은 '자연산화'된 장어를 쓴다.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063)560-2457~8, www.goch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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