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반세기)"아! 경부고속도로"①

70년대 한강의 기적 일군 "대동맥"
km당 공사비 1억원으로 2년반만에 개통
  • 등록 2005-05-17 오후 12:40:40

    수정 2005-05-17 오후 12:40:40

[edaily 이종석기자] ‘고속도로’라는 생소한 용어가 국민들에게 처음 전해진 것은 67년 4월이었다. 그해 5월 있을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직의 박정희 대통령과 야당의 윤보선 후보가 치열한 선거전을 벌이고 있던 때다. 박 후보는 4월29일 장충단공원에서 가진 유세에서 4대강 유역개발을 포함한 국토건설계획을 언급하면서 “빠른 시일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한반도에 고속도로 건설이 언급되는 첫 순간이었다. 박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64년 12월 열흘간의 서독 방문에서였다. 박 대통령은 당시 서독이 자랑하던 아우토반을 주행하면서 아우토반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요 원천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공산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같은 분단국가이면서도 서독은 패전의 좌절과 폐허를 딛고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다. 아우토반을 달리는 차 안에서 에르하르트 당시 서독 수상은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경제 하부구조에 대한 공공투자를 과감하게 하십시오. 히틀러는 독재자였지만 독일 국민에게 아우토반을 남겼습니다…한국의 지형은 산악이 많고 지역간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곳일수록 대동맥을 뚫어야 합니다” 아우토반의 감동은 박 대통령에게 고속도로 건설의 ‘꿈’을 심어줬고, 이 꿈은 6년 후 경부고속도로 준공이라는 대역사로 이어진다. ◇ “자동차 1~2대 지나갈까 말까 하는 나라에 웬 고속도로?” 서독에서 돌아온 박정희는 곧바로 고속도로 공부에 매달렸다. 건설 전문가들이 작성한 연구보고서를 탐독하는가 하면 각국의 고속도로 건설공사에 대한 기록들을 밤늦도록 검토했다. 고속도로 건설에 시공업체로 참여한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은 후일 한국도로공사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대통령이 밤늦게 불러 들어가 보면 많은 고속도로 관련 서적이 쌓여 있는 서재로 데려가 손수 인터체인지 구상을 그려 보이곤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속도로를 가장 적은 경비로 가장 짧은 기간에 완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구상하면서 여러가지 의견을 묻곤 했지요” 2년여에 걸친 개인적인 연구를 끝낸 박정희는 67년 10월 주원 건설부 장관을 불러 “기존 국도를 확장하는 것도 좋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도 좋다. 내년초 착공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안을 수립해 보고하라”며 고속도로 건설을 공식 지시한다. 정부는 11월14일 여당과 연석회의를 열어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을 최종 확정하고, 곧바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기간 고속도로 건설추진위원회’를 구성, 실무작업에 착수했다. 68년 2월1일 박 대통령은 서울 원지동(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부근)에서 거행된 서울-수원간 고속도로 건설공사 기공식에 참석, 발파스위치를 눌렀다. 폭음과 함께 서울을 둘러싸고 있던 남쪽 바위산의 암벽이 쪼개졌다. 4년전 서독 아우토반에서 가졌던 고속도로 건설의 꿈이 바야흐로 실행에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알려지자 전국적으로 반대의견이 들끓었다. 당시 나라 1년 예산이 1500억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전체 예산의 3분의 1 가까이를 쏟아 부어야 하는 고속도로 건설은 다분히 무모한 공상으로 비쳐졌다. 야당은 물론 언론들까지 나서 일제히 반대론을 쏟아냈다. “국도에도 차량이 한두대 지나갈까 말까 하는 마당에 무슨 고속도로가 필요하냐” “고속도로에 투입할 자금이 있으면 다른 경제분야에 지원하는 것이 더 낫다”는 등 반대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심지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기획원 내에서 조차 반대론이 득세했다. 이 같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었다.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으며, 그 어떤 반대의견에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당시 기획원 예산국장을 맡았던 김주남씨의 회고.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우리의 경제규모가 작고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실은 나도 반대입장이었다. 도저히 재원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찬성한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도 박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기획원 내부에서도 반대파가 많았지만 대통령이 워낙 강하게 나오니 그저 따라간 것이다. 그 때 차관붐이 한창 일어났지만 외국에서도 고속도로 건설에 차관을 줄 리가 없었다. 타당성 조사에만도 몇 년이 걸릴 일이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런 문제점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밀어붙였다”(김흥기, 영욕의 한국경제) ◇ “공사비 300억원…서울~부산을 뚫어라” 논란 끝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방침이 확정되자 우선 결정해야 할 것이 노선이었다. 고속도로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를 거쳐, 어디까지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건설부에서 몇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한 끝에 현재 노선인 서울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남단을 기점으로 부산 동래구 구서동에 이르는 428Km 구간이 최종 확정됐다. 이제 남은 것은 사업비 추정과 재원조달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경제기획원, 재무부, 건설부, 서울시, 육군공병감실, 현대건설 등에 각각 소요 사업비를 산출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각 기관이 보고한 사업비는 ▲재무부 330억원 ▲건설부 450억원 ▲서울시 180억원 ▲육군공병감실 490억원 ▲현대건설 280억원 등으로 편차가 컸다. 국가 대동맥을 뚫는 엄청난 공사에 맞춰 견적을 뽑을만한 비교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제기획원은 아예 사업비 추정을 포기했다. 박 대통령은 기관들이 보고한 내용을 검토해 서울시 180억원과 건설부 450억원의 중간치인 315억원과 현대건설이 제안한 280억원을 감안해 최종 300억원으로 사업규모를 확정했다. 건설재원은 휘발유 세율을 100% 인상하고, 도로공채를 발행하는 한편 대일청구권 자금 27억원 등으로 충당키로 가닥을 잡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결과적으로 총 428억원이 투입돼 당초 계획보다 128억원 가량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됐다. 하지만 이 정도 금액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고속도로 건설재원의 5분의 1에도 못미치는 저렴한 비용으로, 최저가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이정표를 세운다. ◇ “땅 내놓는게 애국…한없이 순박했던 민심” 사업비 책정이 마무리 되자 정부는 고속도로에 편입되는 용지 매입에 착수한다. 정부는 용지 매입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 시도, 시군읍면 별로 후원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땅값 낮추기 경쟁을 유도했다. 자연히 시장 군수들간에 경쟁이 일어났다. "토지구획정리"라는 명분 아래 고속도로 용지를 무상으로 확보하는 경쟁이 벌어졌다. 경부고속도로 기점인 3한강교 남단에서 남쪽으로 7.6Km 9만2000여평의 땅이 토지구획정리라는 명분 아래 무상으로 확보됐다. 이처럼 무상으로 확보된 용지외에 확보 안 된 민간소유 용지 582만7000평은 지주와의 합의를 거쳐 사들여야만 했다. 지금은 도로건설 비용의 40%가 토지매입비로 책정되지만 당시 민심은 한없이 순박했다. 고속도로 용지대금을 낮추는 것이 곧 애국하는 길이라는게 당시 국민들의 인식이었고, 토지 소유주들도 군소리 없이 정부의 용지매입 지침에 따랐다. 토지 소유주들의 순박한 협조 속에 528만7000평의 용지를 총 18억7667만원의 예산으로 모두 사들였다. 평당 평균 322원의 가격으로 사들인 셈이다. 아무리 35년전 일이라고는 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싼 값이었다. 당시 파고다 담배 한 값이 40원, 쌀 한가마에 4350원 하던 때였다. 경부고속도로가 2년5개월 이라는 짧은 기간에 성공적으로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와 함께 국민들의 이 같은 헌신적인 협조와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한국경제 반세기"는 매주 화, 목요일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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