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모습을 바꿨을 뿐'

'방법으로서의 경계' 번역 출간
'경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전해
경계, 굳건하고 강화되고 있어
  • 등록 2021-02-21 오후 4:52:26

    수정 2021-02-21 오후 4:52:26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본국으로 귀국하려고 출국 심사를 받는 와중에 자신의 나라에 쿠데타가 터지며 내전이 터졌다. 모든 비자와 여건이 정지됐다. 순간 자신의 국적은 사라졌고 또한 돌아갈 자신의 고국도 남을 타국도 사라졌다. 터미널이라는 ‘무국적’의 공간에 남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톰 행크스 주연의 미국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이다.

1990년 일본 경영학자 오마에 겐이치의 책 『경계 없는 세상』이 출간되었다. 인류가 머지않아 국가 간 경계와 장벽이 무너진 하나의 지구촌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확신했었다. 실제로 유튜브와 SNS가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소식들을 전해주고 상품과 사람의 국경을 넘는 이동이 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반기를 드는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방법으로서의 경계』(저자 : 산드로 메자드라, 브렛 닐슨. 출판 : 갈무리)의 저자들은 ‘경계 없는 세상’이라는 이미지로는 더는 우리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이 책에 따르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경계는 확산하고 증식하고 있다.

2019년 멕시코의 ‘불법 이주민’을 겨냥한 트럼프의 장벽이 세워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후 전 세계 각국에서 ‘백신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오늘날 경계는 굳건하고 오히려 강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저자들은 ‘경계는 확산하고 있다’는 주장이 민족국가가 귀환하고 있다거나, 민족국가가 전지구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과는 다르다고 분명히 말한다. 민족국가는 오늘날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고 있고, 과거와는 다른 형식을 띠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경계 연구자’는 국경선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구획들을 탐구해야 한다. 경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경계는 복합적인 사회 제도다. 경계는 사람, 화폐, 물건의 전지구적 통로들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장치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경계지’(borderland), ‘변방’(frontier)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서 경계를 다양한 행위자들과 움직임,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인식한다.

경계를 사고하는 익숙한 방식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경계는 가로막고 배제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는 경계를 철조망, 장벽, 장애물의 이미지로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경계의 목적은 통제하는 것이다’라는 통상의 이해에 도전하면서 ‘경계는 생산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경계는 현대의 전지구적이고 탈식민적인 자본주의의 다양한 시공간들을 생산하는 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경계, 시간, 통치성, 시민-노동자, 번역, 그리고 공통적인 것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경계’를 주제로 한 책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다양한 주제들이 다뤄지며 독자들에게 수많은 개념무기들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인 산드로 메자드라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인문학부 교수로, <유로노마드>의 공동 창립자이며 탈식민주의 비평과 전지구화와 이주 및 정치의 관계, 현대 자본주의 등을 연구해왔고, ‘포스트-오뻬

라이스모’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브렛 닐슨은 호주 서시드니 대학 문화사회연구소 교수로, 전지구화에 대한 대안적 인식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이주 행위, 노동 및 자본의 변혁, 기술 변화, 지정학적 과정 등을 연구한다.

남청수 옮김. 512쪽. 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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