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의 월가 키워드)Poison Pill

  • 등록 2003-10-30 오후 12:12:12

    수정 2003-10-30 오후 12:12:12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한다면 기업 인수·합병(M&A,Mergers and Acquisitions)은 금융시장의 종합예술이다. M&A에는 파이낸스, 산업전략, 법률논쟁, 언론 플레이, 심지어 정치적인 로비까지 동원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플리트보스턴이 합병을 발표한 이후 월가는 다시 한번 M&A 테마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을 놓고 지난 6월 캘리포니아에서 발발한 오라클과 피플소프트의 M&A 전쟁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양사의 분쟁은 `적대적 M&A`의 전형이다. 그 자체로 한 편의 흥미진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라클의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엘리슨과 피플소프트의 CEO인 크레그 콘웨이, 두 사람의 인간적 갈등과 대립이 볼만하다. ◇M&A에 대항하는 M&A 싸움을 먼저 건 쪽, 공격자는 오라클이다. 오라클은 지난 6월6일 피플소프트 측에 주당 16달러의 가격으로 공개 인수를 제의했다. 피플소프트 이사회는 이를 거절했다. 오라클은 인수 가격을 19.5달러로 올렸다. 피플소프트는 이역시 거절했다. 오라클은 연말까지 공개 매수 기간을 연장한 상태다. 두 회사의 M&A 분쟁 개요는 이렇게 간단하다. 그러나 속내는 간단치 않다. 우선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느냐"가 애매해다. 피플소프트는 6월2일 또 다른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인 JD에드워드와의 합병 계획을 발표한다. 오라클은 이 발표를 접한 직후, 피플소프트 M&A를 전격 선언한 것이다.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이후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피플소프트는 JD에드워드와의 합병을 선택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오라클이 대항 전략으로 피플소프트 M&A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오라클-피플소프트 분쟁에는 "네가 살면 내가 죽는다"는 `정글의 법칙`이 숨어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M&A는 때때로 상대편을 제거하는 독약(Poison Pill)의 기능을 한다. 오라클은 피플소프트가 파놓은 생존의 우물(JD에드워드와의 합병)에 적대적 M&A라는 독약을 풀어 놓은 것이다. 재밌는 것은 독약 전략이 `적대적 M&A 방어 기술`의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사무라이와 카우보이 피플소프트는 1987년 캘리포니아 플리산톤에 데이비드 더필드가 설립한 소프트웨어 업체다. 90년대 IT 버블기에 급성장했지만, 버블이 꺼진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3위를 달리고 있다. 피플소프트의 CEO인 콘웨이는 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며 1999년 피플소프트에 합류했다. 콘웨이와 오라클은 묘한 인연이 있다. 그는 1993년까지 오라클에서 8년간 부사장으로 일했다. IT 업체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오라클에서 연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라클의 CEO인 앨리슨은 한 때 부하였던 콘웨이가 운영하는 회사를 공격한 꼴이다. 앨리슨은 "콘웨이와는 항상 충실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말했지만 M&A 전쟁에 돌입한 후 두 사람은 적이 됐다. 오라클의 앨리슨은 포브스가 발표한 400대 부호의 한 사람으로 실리콘 밸리의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1977년이후 오라클의 CEO를 역임하고 있다. 앨리슨은 집을 일본 풍으로 꾸며놓고, 공개적인 활동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앨리슨과 콘웨이는 M&A 전쟁을 벌이면서 인간적으로도 원수가 됐다. 콘웨이는 "오라클의 공개 인수 제의는 피플소프트와 JD에드워드와의 합병을 방해하려는 술책"이라며 "앨리슨은 반사회적 인간(sociopath)"이라고 폭언했다. 앨리슨도 콘웨이에게 M&A 제의를 심사숙고하고 받아들이라며 점잖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콘웨이가 M&A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자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앨리슨은 "피플소프트로부터 위협적인 말만 계속 듣고 있다"며 "크레이지(Craigie)는 내가 그의 개를 쏘아 죽이려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앨리슨은 "나는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크레이지와 개가 함께 있고, 총알이 하나 밖에 없다면 개를 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극언했다. 앨리슨은 피플소프트의 크레그 콘웨이(Craig A. Conway)의 이름 `크레그`를 의도적으로 `미치광이(crazy)`와 비슷하게 발음함으로써 경멸감을 더했다. 양사 CEO들의 감정 출돌은 직원들간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피플소프의 열성 직원들은 오라클을 비난하는 모임을 결성하고 "Larry, Kiss Our Apps."라는 글이 새겨진 티셔츠를 인터넷 상에서 판매하기도했다. 여기서 `Apps`는 컴퓨터 응용프로그램(application program)의 약자로 "래리 회장, 피플소프트 응용 프로그램이나 써보시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Apps`의 발음이 `Ass(엉덩이)`와 유사해 "엿이나 먹어라(Kiss my ass)`라는 욕설과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콘웨이는 지난 7월 예정대로 JD에드워드와 합병을 마무리하고 나서 "우리는 아주 좋은 말을 얻었다"며 서부 카우보이 식으로 자신감을 나타냈다. 사무라이 앨리슨과 카우보이 콘웨이의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M&A는 법이다" M&A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돈보다 앞서 법에서 이겨야 M&A에 성공한다는 뜻이다. 오라클-피플소프트의 법률 분쟁은 반독점(antitrust) 소송과 독약 전략(Poison Pill)에 대한 무효 소송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반독점 소송이다. 기업의 합병은 시장 지배력을 높이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반독점 문제를 발생시킨다. 최근 주요 기업간 M&A는 반독점 규제를 어떻게 피하느냐가 성패를 갈랐다. GE와 하니웰의 합병이 유로집행이사국의 독점 판정으로 불발에 그친 사례가 대표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플리트의 합병도 "특정 은행이 미국내 전체 예금의 10%를 점유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까다로운 독과점 규정을 피해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만 최종 확정된다. 두 은행이 합병할 경우 예금 점유율은 9.8%다. 피플소프트가 오라클의 M&A에 저항하는 근거 중 하나도 반독점 규제다.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인수하면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의 지배적 기업이 된다는 것.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오라클은 2위에 불과하다. 3위 피플소프트를 인수한다고 해도 부동의 1위인 독일의 SAP를 따라잡지 못한다. 유로집행이사국이 오라클의 M&A를 주시하는 이유는 SAP가 있기 때문이다. 오라클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시장 지배자는 존재할 수 없다며 반독점 소송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더구나 SAP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도 언제든지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다. 오라클의 이같은 주장은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M&A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수의 경쟁자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M&A를 통해 경재자의 수를 줄이고 경쟁자가 보유한 고객과 시장을 흡수해야한다. 반독점 소송의 다른 당사자는 이해 관계가 있는 주정부다. 코네티컷주의 검찰 총장 리차드 블루멘탈은 오라클의 적대적 M&A가 반독점 규제를 위반한 것이라며 오라클을 압박하고 있다. 코네티컷 주정부는 피플소프트로부터 행정망 소프트웨어를 공급받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오라클의 M&A 공격때문에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코네티컷주가 이에 발끈, 오라클을 반독점 위반으로 몰아부치고 있는 것. 코네티컷이 주동이 되서 30여개의 다른 주 검찰도 오라클에 대한 반독점 소송에 공동 전선을 펴기로 잠정합의한 상태다. 미국 법무부는 오라클-피플소프트 합병이 반독점 규제를 위반한 것인지 심사숙고 중이다. 법리 싸움의 다른 전선은 독약 전략을 놓고 벌어지고 있다. 독약 전략은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한 전형적인 기술로 심지어 오라클도 비슷한 방어 장치를 가지고 있다. 피플소프트의 독약 전략에 대해 소송을 낸 오라클도 같은 방어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독약의 정체 오라클은 피플소프트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해야하는 선관의 의무를 저버리고, 독약 전략을 이용해 정당한 M&A를 방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피플소프트의 일부 소액 주주들도 비슷한 이유로 피플소프트 이사진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독약 전략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미국내에서 M&A가 기승을 부릴 당시 JP모건이 처음으로 시도한 M&A 방어 전략이다. 독약 전략은 적대적 인수 시도가 있을 때 대규모의 주식을 발행, 공격자의 공격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독약 전략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적대적 공격을 받은 기업의 기존 주주들이 미리 약정된 낮은 가격으로 발행된 대량의 주식을 인수하는 것이다(flip-in). 이렇게 되면 공격자가 확보한 주식의 의결권이 희석되고, M&A 비용이 급상승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합병이 이뤄졌을 경우 미리 설정된 옵션에 의해서 기존 주주들이 공격한 기업의 주식을 싼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flip-over). 예를 들어 공격 받은 기업의 특정 주식에는 특별한 옵션을 부여해서 합병이 되더라도 합병 비율을 2대1 또는 4대1로 크게 높이는 것이다. 독약 전략은 원하지 않는 M&A 시도가 있을 경우 특권적인 주식을 발행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합병이 됐을 때 아주 높은 가격으로 상환을 약속받는 우선주나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채권을 발행하는 전략을 특별히 `마카로니 방어전략(Macaroni Defense)`이라고 한다. 마카로니가 냄비에서 불어 그 양이 갑자기 불어나는 것 처럼 적대적 M&A라는 상황에서 채권 가격이 급등하는 것에 빗댄 것이다. 피플소프트는 변형된 독약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오라클은 M&A 분쟁이 발생하면 피플소프트의 소프트웨어 매출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인수할 경우 기존의 피플소프트 소프트웨어를 추가로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라클의 이같은 태도도 `남의 우물에 독약을 타는 훼방 전략`이다. 피플소프트는 이에 대응, 피플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했으나 오라클에 합병돼 피해를 입게 되면 제품가격의 4~5배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준다는 조건을 붙여서 소프트웨어를 판매했다.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인수하더라도 이같은 조건이 붙은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기업에게는 거액의 리베이트를 물어줘야한다. 독약 전략이 난공불락의 방어책은 아니다. 공격자가 기업 내의 다른 주요 주주와 결탁, 전격적으로 정관을 바꾸면 무용지물이 된다. 소송을 통해 독약 전략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다. 오라클은 현재 두가지 공격 전략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오라클은 피플소프트의 창립자인 데이비드 더필드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약 전략에 대한 소송도 별도로 진행 중이다. 독약 전략은 원리적으로는 M&A 방어책이지만,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기존 주주에게 저가의 주식을 대량으로 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세무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후의 전쟁`과 독약 전략 앞서 몇차례 지적한 것처럼 오라클의 M&A 제의 자체가 일종의 독약 전략이다. 적대적 M&A로 피플소프트와 JD에드워드의 합병을 방해하고, 피플소프트의 영업에 타격을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오라클의 의도와 달리 이같은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피플소프트가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라클-피플소프트 전쟁의 결과에 따라 소프트웨어 업계의 경쟁 구도가 180도 바뀔 수 있다. 업계 2위와 3위의 싸움이지만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인수하면 업계 1위인 SAP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한 발 떨어져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트나 IBM, 시벨 등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전쟁의 결과에 따라 새로운 시장 전략을 짜게 될 것이다. 오라클은 피플소프트를 인수하더라도 피플소프트의 생산품을 추가로 생산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오라클은 피플소프트의 고객과 시장을 확보한 후 자사의 소프트웨어로 고객들을 이전시킬 것임을 명백히 했다.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오라클의 M&A는 일종의 영토 전쟁인 셈이다. 일단 고객을 확보하면 소프트웨어 판매도 판매지만 막대한 규모의 서비스 시장과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피(fee)가 기다리고 있다. 오라클이 엄청난 비용과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피플소프트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은 그만큼 전리품이 가치있기 때문이다. ◇월가의 대리전 M&A는 해당 기업들에게는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이지만, 이 싸움을 기획하는 월가의 투자은행들에게는 훌륭한 사업 기회다. 피플소프트의 방어 전략은 골드만삭스와 시티그룹이 짜고 있다. 이들은 법률 논쟁에서부터 여론 형성, 방어자금 조달 등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오라클의 공격 전략은 CSFB의 머리에서 나오고 있다. 사실 오라클과 피플소프트를 합병하자는 아이디어의 최초 제안자는 다름 아닌 콘웨이다. 앨리슨도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해 콘웨이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재편을 위해 오라클과 피플소프트간의 전략적 제휴 또는 합병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협상 과정에서 두 기업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콘웨이의 제의는 "없던 일"이 됐다. 앨리슨은 그러나 콘웨이의 아이디어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CSFB는 이를 눈치채고 적극적으로 오라클에 접근, 공개 매수 대행과 브릿지론 등 M&A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오라클에 제공하고 있다. CSFB 입장에서는 이번 M&A가 실리콘 밸리에서의 명성을 되찾는 절호의 기회다. CSFB는 IT 버블 시대 주요 벤처 기업들의 돈 줄 역할을 하며 특수를 누렸다. 기업공개(IPO)와 주가 관리를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하며 실리콘 밸리를 주름잡았다. 이를 주도한 것이 다름 아닌 프랭크 쿼트론이다. CSFB는 쿼트론을 수장으로 기업 분석과 IPO를 연결, 기술주를 가장 잘 아는 투자은행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CSFB는 그러나 기술주 거품이 붕괴되고 쿼트론이 사법당국에 의해 기소되면서 신뢰도에 큰 상처를 입었다. IPO를 위해 기업 분석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 쿼트론이 회사를 떠난 후 전열을 정비하고 첫번째로 추진한 프로젝트가 바로 오라클 M&A다. 최근 쿼트론에 대한 재판은 배심원단의 의견 불일치로 무산됐다. 오라클 M&A마저 성공한다면 CSFB는 명실상부 `면죄부`를 얻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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