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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 욕망하라, 세상이 바뀔 것이다

일본 로망 포르노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리뷰
  • 등록 2017-07-03 오전 9:59:21

    수정 2017-07-03 오전 11:27:42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오동진 영화평론가] 옆집 여자의 출렁이는 젖가슴을 바라 보며 베란다에서 주인공 남자가 자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보는 사람들에 따라 불편하고 역겨울 수도 있겠다. 

어쩔 수가 없다. 그게 이 영화의 숙명이다. 섹스 신과 그에 버금가는 노출 신이 점점 더 많아진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들은 거침없이 웃옷을 벗어 제킨다. 옆집 여자가 왜 아침마다 이웃 집 담벼락 모퉁이에서 스트립 쇼를 벌여주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뭐, 뻔한 이유이기도 하겠다. 이 여인 외에 여기 영화 속 여자들은 꼭 그렇게 ‘주체적'이지만은 않다. 남자의 시선으로, 남자가 여자를 대상화하는 그런 모습으로 주인공이 여자들 브래지어를 잡아 당길 때가 더 많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흉포(凶暴)하다. 어릴 때 동네에 물건을 팔러 다녔던 일명 ‘뱀 장사’ 같다. ‘아이들은 가라!’고 그는 떠들고 다녔다. 살짝 징그럽다. 그런데 다들 '우'하며 몰려 들었다. 이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도 그렇게 두 눈을 가리는 척 다들 몰래 보고 싶어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신지(이타오 이츠지 분)가 ‘자는’ 여자는 ‘네 명 반’이다. 아침에 그에게 ‘홀로 섹스’를 시켰던 옆집 여자 외에 일단 자신이 함께 일할 의상 담당 유부녀(이제부터는 배우 이름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 실제로 AV배우들이기 때문이다.)와 그는 첫 번째 정사를 벌인다. 영화 속에서 이 여자가 제일 착하다. 그녀는 남자를 진짜 걱정해 준다. 왜냐하면 신지는 한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할 만큼 ‘잘 나가는’ 감독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유부녀만 잘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가 어느 학교 영화과에서 가르친 여자 제자는 스스럼없이 옷을 벗는다. 그리고 결국 같은 또래 남자 친구때문에 사단이 난다. 3류 여배우도 신지의 사연을 알고는 거리 골목 귀퉁이 어둠 속에서, 무엇보다 밑에는 박스만 깐 채 그와 섹스를 나눈다. 이들 여자는 ‘자발적으로’ 그와 정사를 한다. 다소 강제적이긴 해도 병원의 간호사도 신지와 섹스한다. 신지의 이런 섹스 행각은 요일 별로 기록된다. 

그가 그렇게 ‘저지르며’ 다니는 이유는 말 못할 ‘정신적’ 고민이 있는데 아내가 코마 상태로 누워 있고 그녀가 그렇게 된 데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질투심이 많았던 그녀를 깨우기 위해 신지는 여자들과 질펀하게 섹스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그녀가 ‘귀신같이’ 눈치 채고 화들짝 깨어 날 수가 있다고 그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아내는 평소에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즐겨 연주하곤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생각해 보면 별 황당한 이유일 수 있다. 이 ’따위’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은 오로지 섹스만을 보여 주려는 ‘야욕’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스멀스멀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마음 속으로 다음 정사 신이 기다려지며(그래서 실제로 시간을 들여다 보기도 하는데) 주인공이 다음엔 어떤 포즈와 어떤 체위로 여자들을 ‘흥분’시킬 지가 궁금해진다. 뭐 걱정할 것 없다. 영화 속 여자들은 스스로 달아 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왜들 이럴까 싶다가도 하긴 사람들이 다 저렇게 살아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더 나아가 저게 뭐 어떠냐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좀 ‘뜨거워진다’ 한들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세계가 더 따뜻해질 수도 있겠다. 전쟁을 하는 것보다 섹스를 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로망 포르노다. 로망 포르노는 원칙 아닌 원칙이 10분마다 ‘무조건’ 정사 신이 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 지키면 감독이 무슨 얘기를 하든, 무슨 실험을 하든 제작자가 상관하지 않는 작품을 말한다. 일본에서 1970~80년대에 전체 편수의 40%를 차지할 만큼 주류를 형성했던 작품 군이 바로 로망 포르노다. 1950년대 TV의 등장으로 영화산업이 붕괴 위기에 몰리고 이에 맞서 당시 메이저 스튜디오 급이었던 닛카츠 스튜디오가 이 작품 군을 들고 나와 산업을 재생시키는데 성공했다. 더 나아가 이 로망 포르노 영화들은 신인 작가 감독들을 발굴해 내는 등용문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10분마다의 섹스 신’ 보다 ‘어떤 얘기를 하든 감독의 자율에 맡긴다’에 방점이 찍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망 포르노 영화에 작품성이 구가(謳歌)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도 이 로망 포르노를 통해 데뷔했을 정도다. 일본 감독 대다 수가 로망 포르노 출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이렇게, 작품 얘기보다 그 주변 얘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 역시 유명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유키사다 이사오가 바로 그다. 이사오 감독은 우리에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고'라는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사오가 이번에 이 신(新) 로망 포르노의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은 닛카츠 스튜디오가 자신의 행적 45주년을 기념하는 일명 ‘로포리 프로젝트’ 곧 ‘로망 포르노 리부트’ 시리즈 5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네 편은 나카다 히데오('링' '검은 물밑에서' 등)의 '화이트 릴리'와 소노 시온(맞다. 일본 현대영화계의 이단아 소노 시온이다. '차가운 열대어' '두더쥐' 등)의 '안티 포르노' 그리고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의 '암고양이들', 그리고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의 '바람에 젖은 여자'다. '안티 포르노'는 이미 국내 극장가에 선보였으며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가 7월 6일에 개봉되는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영화들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단,  IPTV와 동시에 개봉되는 조건이다. 사실상 비디오로 직행하는 B급 영화이며 극장보다는 ‘커튼 치고 집에서 혼자 보는 야한 영화’라는 점을 역으로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페미니스트들이라면 ‘거품을 물고’ 비난할 이런 영화가 왜 이런 시기에 나왔을까. 그건 아마도 역설적으로 테크놀로지의 진화 때문일 것이다. 50년대의 TV처럼 지금의 디지털 환경이 극장용 영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넷플릭스의 '옥자' 개봉 논란을 보라.) 그 같은 신(新) 기술에 대한 위기감이 닛카츠 스튜디오로 하여금 ‘로포리 프로젝트’를 들고 나오게 했을 것이다.

비단 그런 기술 논쟁만이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일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음란한’ 영화들이 화제를 모으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사람들이 ‘욕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건 거꾸로 사회가 사람들의 욕망을 ‘막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와 사회가 점점 더 ‘닫힌’ 구조가 될 때 사람들은 스스로 ‘외설의 전투 구도’를 짜기 시작한다. 너희들이 우리를 억압하면 할수록 우리가 얼마나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가를 보여준다는 식이다. 

생각해 보면 일본 아베 정권은 사람들을 옥죄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그가 최근 통과시킨 일명 ‘공모죄’ 법안이야말로 그 같은 분위기를 대변한다. 공모죄는 ‘조직적 범죄집단의 활동으로 2명 이상이 계획하고 (처벌) 대상이 되는 범죄를 구성원 중 누군가가 자금과 물품을 조달하거나 장소를 물색하는 등 준비 행위를 할 경우 5년 또는 2년 이하의 징역과 금고에 처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건 한국의 국가보안법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이 확실하게 군국주의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사람들(민진당이나 공산당 등)은 저항하지만 지난 50여 년 동안 국회 다수를 차지하는 연립여당(자민당과 공명당)때문에 맥을 추지 못한다. 그 좌절이 이 ‘로포리 프로젝트’에 담겨져 있다고 하면 지나친 얘기일까. 뭐 그럴 것이다. 그런 해석 역시 말도 안될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 야 말로 자신이 그동안 살아 왔던 정치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답게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내용이야 의도적으로 엉성한 척, 섹스 신 연결로 짜 놓았다 치더라도 영상 하나만큼은 실로 뛰어나다. 촬영, 조명, 음향 하나하나가 나무랄 데가 없다. ‘이런 영화’라고 ‘막 찍지’ 않았다. 어떤 장면은 마치 영화는 이렇게 찍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 주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B급 영화의 교본 같은 작품인 셈이다. 유키사다 이사오는 자신이 역시 ‘잘 찍는’ 감독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감독은 일단 잘 찍고 봐야 한다. 만고의 진리다. 

◇[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은 영화평론가 오동진과 함께합니다.

이 글의 필자인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상세하다 못해 깨알같은 컨텍스트(context) 비평을 꿈꿉니다. 그의 영화 얘기가 너무 자세해서 읽는 이들이 듣다 듣다 외치는 말, ‘닥쳐라! 영화평론’. 그 말은 오동진에게 오히려 칭찬의 글입니다. 위 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닥쳐라!’ 댓글을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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