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뒤 빨간 극장에 작별을 고합니다[알쓸공소]

6월 문 닫는 백성희장민호극장·소극장 판
옛 기무사 수송대 부지, 2010년 문화공간으로
연극의 재미 갖춘 작품 선보였던 공연장
2026년 서계동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 등록 2023-06-09 오후 1:00:00

    수정 2023-06-09 오후 1:00:00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들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서울역 근처에도 공연장이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 자리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입니다. 서울역 뒤편으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빨간 극장인데요. 연극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가봤을 공연장입니다.

서계동 국립극단 간판. (사진=장병호 기자)
이곳에 공연장이 들어선 것은 2010년,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출범하면서부터입니다. 원래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옛 국군보안사령부) 수송대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기무사 이전 이후 한동안 비어있던 곳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방부에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해 2010년 12월 27일 ‘서계동 열린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기무사에서 사용하던 차고, 정비고, 막사 건물이 공연장, 사무동, 연습실 스튜디오가 됐죠.

백성희장민호극장은 182석, 소극장 판은 1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났던 공연은 연극만의 재치와 생동감으로 넘쳐났습니다. 특히 젊은 창작자들의 참신한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죠. 저 역시 공연 담당 기자를 하면서 이들 두 공연장을 통해 연극의 매력을 많이 느꼈습니다.

아쉽게도 이곳은 6월을 끝으로 잠시 작별을 고합니다. 현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보존과학자’,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인 연극 ‘영지’가 이곳에서의 마지막 작품이 됐습니다.

지난 7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선 그 마지막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을 사랑해온 관객들을 초청해 ‘보존과학자’를 함께 관람하는 자리였습니다. 공연 시작 전 김광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김 단장은 “13년간 서계동에서 많은 작품이 공연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이 자리를 찾아준 관객의 관심과 애정 어린 격려 덕분이었다”라며 “서계동의 새로운 극장에서 다시 만날 꿈을 꾸어본다”고 말했습니다.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사진=장병호 기자)
백성희장민호극장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국립극단 단원이었던 백성희(1925~2016), 장민호(1924~2012)의 이름을 딴 극장입니다. 2010년 극장 개관 당시 두 분은 생존해 있었는데, 국가 주도로 생존 인물을 기념하는 극장을 만든 건 이곳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날 김 단장은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배우의 나이 순으로 ‘장민호백성희극장’으로 이름을 지으려고 했지만, 장민호 선생님이 “레이디 퍼스트”라며 “연극 배우로는 내가 후배다”라고 해 지금의 이름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두 배우는 2011년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 공연이었던 연극 ‘3월의 눈’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백성희장민호극장의 마지막 공연으로 선보이고 있는 연극 ‘보존과학자’는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작가’를 통해 개발한 윤미희 작가의 희곡입니다. 연출가 이인수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장르의 작품입니다. 물건의 가치를 판단해 보존과 복원에 대해 결정하는 ‘보존과학자’가 오랜 시간 쌓여있던 물건들 중 예술작품으로 여겨지는 텔레비전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작품은 꽤 독특했습니다. 텔레비전을 복원하려는 미래의 이야기, 그리고 텔레비전이 1000년 넘게 간직해온 과거의 사연이 얽혀 있는데요. 다소 복잡한 내용이었지만,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언젠가 사라지게 될 평범한 물건, 평범한 사람의 삶이라도 누군가 기억해준다면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이제 문을 닫는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과 잘 어울리는 공연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마지막 작품 연극 ‘보존과학자’의 한 장면. (사진=국립극단)
‘보존과학자’는 오는 18일까지 공연합니다. 맞은편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인 청소년극 ‘영지’는 오는 11일 막을 내리고요. 국립극단은 8월부터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갑니다. 물론, 국립극단이 운영하고 있는 명동예술극장은 계속해서 관객과 만날 예정입니다.

국립극단이 떠난 뒤 서계동 부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2026년 재탄생한다고 합니다. 그때는 국립극단도 다시 서계동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 ‘복합문화공간’을 놓고 이런저런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까지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중요한 건 그동안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을 사랑해온 관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새롭게 탄생할 공간 또한 관객을 위한 공간이 돼야 할 것입니다.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사진=장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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