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현의 일상탈출)(29)구릉족의 파티

  • 등록 2007-03-09 오후 4:28:27

    수정 2007-05-04 오후 2:26:10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태풍이 오나. 내일 트래킹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밤새 비 소리에 여러번 깼다. 비 소리 뿐만이 아니다. 안나푸르나에 사는 닭들은 오밤중에도 울어댄다. 깼다가 선잠 들었다가를 수차례 반복하다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반.

창문을 열어 보니 시계가 2m도 안되는 듯 하다. 앞이 온통 안개로 뽀얗다. 일출은 고사하고 까딱 하다가는 롯지에 발이 묶이게 생겼다.

▲ 안나푸르나 비촉데우랄리, 비 온 뒤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다행히 10시쯤 비는 멈췄고 안개도 어느정도 걷혔다. 채비를 하고 길을 떠났다. 트래킹 이틀째다. 초반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지 밀림을 탐험하는 기분이다.
 
흔들다리 밑으로 보이는 계곡에는 물이 무섭게 소용돌이 치면서 흐르고 있고 산 등성이에는 운해가 낮게 깔려 있다.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어느새 마을이 나오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어느 지점부터인가는 이곳 주민들의 생김새와 옷차림도 점점 하나로 통일돼 갔다. 얼굴 선과 이목구비가 굵직굵직한 인도계통의 사람들은 사라지고 밋밋한 몽골계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질감이 느껴진다. 옷도 티셔츠에 수건을 두른 듯한 치마, 그리고 조끼로 단일화됐다.

산골짜기인데도 마을에는 없는 게 없다. 학교도 몇 군데 지나쳤다. 이런 산골 마을에 학교가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흑장미색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는지 학교 교문을 따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사진기를 들이댔더니 몇 명이 와서 렌즈 앞에 선다. 한장 찍고 났는데 또 몇 명이 와서 서로 앞에 서서 찍겠다고 자리다툼을 한다.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번졌다.

▲ 카메라 앞에 하나둘씩 모여든 아이들
 얼떨결에 수십장을 찍었다. 즉석 카메라가 있었으면 아이들에게 멋진 선물을 줄 수 있었을 텐데..아쉬움을 남기고 갈길을 재촉했다. 한참을 걸었는데 아까 사진 모델 중 하나였던 아이가 앞질러 가면서 인사를 한다.

신발도 슬리퍼인데 종종 걸음으로 빨리도 걷는다. 완전히 산아이다. 그러고 보니 트래킹을 시작하고 나서 간간이 만나는 이곳 주민들 중에 등산화나 운동화를 신고 있는 사람을 못 봤다. 심지어 트래킹 초반에는 치렁치렁하게 사리를 차려 입었거나 헐렁한 펀자비를 입은 여인들이 굽이 있는 샌들을 신고 산을 타는 모습도 봤다.

하루 종일 걸어 오후 3시쯤 목적지인 란드룽에 도착했다. 이 곳에 짐을 풀기로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침대에 침낭을 깔았지만 어제처럼 바로 골아떨어지지는 않았다. 이제 조금씩 몸이 적응을 하나보다.

전날 못 씻은 탓에 일단 씻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포터 하루카가 소란스럽게 불러댄다. 마당으로 뛰어나가 하루카가 가르키는 곳을 봤더니 살짝 모습을 드러낸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 살짝 모습을 드러낸 히운출리봉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처음에는 히운출리의 뾰족한 봉우리만 드러났는데 구름이 조금씩 왼쪽으로 이동하자 안나푸르나 사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트래킹하는 동안 꼭꼭 숨어있던 설산이 이제서야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모습을 완전히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몸 한부분은 꼭 구름 뒤에 숨기고 있다. 꼭 어디 감히 나의 모습을 눈 똑바로 뜨고 다 보려 하느냐는 것처럼..

해가 뉘엿뉘엿 져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는데 설산 근처만 유난히 빛난다. 신비롭다. 하루카도, 롯지 주인 아주머니도,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들도 모두 우리를 보고 운이 좋다고 외쳐댄다. 우기에 저런 풍경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설산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보니 어제 묵었던 비촉데우랄리 롯지의 주인 아저씨다. 우리 걸음으로 5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이곳까지 왠 일일까. 왼쪽 가슴에는 꽃 장식을 한 이름표 같은 것을 달고 있다.

▲ 짐을 잔뜩 메고 어디론가 가는 구릉족 여인
들어보니 오늘밤 이 근처에서 파티가 열린단다. 이 근처 계곡에 새로운 다리를 놓는데 산동네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직접 건설하고 모금도 한단다. 아까부터 가슴에 꽃 장식의 이름표를 붙인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모두 다리건설 때문인가 보다.

정말 밤 10시가 되자 북소리와 노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괜히 궁금해진다. 누가 초대한 것도 아닌데 그냥 가보고 싶었다. 일행과 함께 소리를 따라 찾아가봤다. 마당에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주민들은 우리를 보자 의자를 가져다주며 앉을 자리를 마련해줬다. 귀빈대접이다.

파티는 참 단순하다. 누가 한소절 선창하면 비슷한 음을 북소리에 맞춰 다 같이 부른다. 그 단순한 노래에 맞춰 몇 명은 앞에 나와 춤을 추기도 한다. 춤 추라고 잡아 끄는 사람도 없고 그저 추고 싶은 사람이 나와서 춘다. 특징도 없고 그냥 리듬에 몸을 맡기며 흐느적거리는 춤이다.

가만히 보니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나와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모두 여자다. 남자들은 그저 뒷짐 지고 관망하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면서 수많은 경작지를 지나쳤는데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였다. 롯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여자다. 음식은 물론이고 청소와 정리정돈 모두 여자의 몫이었다. 그래서 파티도 여자들 차지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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