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어 보니 시계가 2m도 안되는 듯 하다. 앞이 온통 안개로 뽀얗다. 일출은 고사하고 까딱 하다가는 롯지에 발이 묶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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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다리 밑으로 보이는 계곡에는 물이 무섭게 소용돌이 치면서 흐르고 있고 산 등성이에는 운해가 낮게 깔려 있다.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어느새 마을이 나오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어느 지점부터인가는 이곳 주민들의 생김새와 옷차림도 점점 하나로 통일돼 갔다. 얼굴 선과 이목구비가 굵직굵직한 인도계통의 사람들은 사라지고 밋밋한 몽골계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질감이 느껴진다. 옷도 티셔츠에 수건을 두른 듯한 치마, 그리고 조끼로 단일화됐다.
산골짜기인데도 마을에는 없는 게 없다. 학교도 몇 군데 지나쳤다. 이런 산골 마을에 학교가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흑장미색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는지 학교 교문을 따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사진기를 들이댔더니 몇 명이 와서 렌즈 앞에 선다. 한장 찍고 났는데 또 몇 명이 와서 서로 앞에 서서 찍겠다고 자리다툼을 한다.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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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걸어 오후 3시쯤 목적지인 란드룽에 도착했다. 이 곳에 짐을 풀기로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침대에 침낭을 깔았지만 어제처럼 바로 골아떨어지지는 않았다. 이제 조금씩 몸이 적응을 하나보다.
전날 못 씻은 탓에 일단 씻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포터 하루카가 소란스럽게 불러댄다. 마당으로 뛰어나가 하루카가 가르키는 곳을 봤더니 살짝 모습을 드러낸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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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져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는데 설산 근처만 유난히 빛난다. 신비롭다. 하루카도, 롯지 주인 아주머니도,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들도 모두 우리를 보고 운이 좋다고 외쳐댄다. 우기에 저런 풍경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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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밤 10시가 되자 북소리와 노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괜히 궁금해진다. 누가 초대한 것도 아닌데 그냥 가보고 싶었다. 일행과 함께 소리를 따라 찾아가봤다. 마당에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주민들은 우리를 보자 의자를 가져다주며 앉을 자리를 마련해줬다. 귀빈대접이다.
파티는 참 단순하다. 누가 한소절 선창하면 비슷한 음을 북소리에 맞춰 다 같이 부른다. 그 단순한 노래에 맞춰 몇 명은 앞에 나와 춤을 추기도 한다. 춤 추라고 잡아 끄는 사람도 없고 그저 추고 싶은 사람이 나와서 춘다. 특징도 없고 그냥 리듬에 몸을 맡기며 흐느적거리는 춤이다.
가만히 보니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나와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모두 여자다. 남자들은 그저 뒷짐 지고 관망하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면서 수많은 경작지를 지나쳤는데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였다. 롯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여자다. 음식은 물론이고 청소와 정리정돈 모두 여자의 몫이었다. 그래서 파티도 여자들 차지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