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14일은 사형선고일

  • 등록 2020-02-14 오전 11:25:03

    수정 2020-02-14 오전 11:25:03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14일 초콜릿 제품 매출이 늘어나는 발렌타인 데이가 어김없이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진 최근 사정을 반영하듯, 14일 오전 각종 기념일마다 오르는 실시간 검색어에는 ‘발렌타인’과 함께 안 의사의 이름이 나란히 보인다.

안 의사는 대한제국 말기 독립운동가로 일제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역에서 사살한 의거로 한국사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겼다.

안 의사 의거는 1909년 10월 26일 실행됐다. 하얼빈 역에서 매복 중이던 안 의사는 플랫폼에서 이토를 확인하고 벨기에 FN사에서 만든 자동권총 FN M1900 권총으로 그를 저격했다. 안 의사가 발사한 탄환 3발 모두 급소를 맞췄고 이토 히로부미는 얼마 후 사망한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 의사는 뤼순에 있는 일본 법원에 송치돼 재판을 받게 된다. 당시 이토가 거물 정치인이었고 일제에 대한 국제적 반발이 컸던 때라 안 의사를 변호하려는 이들도 많았으나, 일본 법원이 변호인 선임을 불허하면서 관선 변호사가 형식적인 변호를 맡게 된다.

그마저도 일본 정부가 법원에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려 사법부 독립성조차 지켜지지 않은 날림 재판이었다.

안 의사는 결국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3월 26일 오전 10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안 의사는 유해를 하얼빈 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해방이 되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일본 당국이 안 의사의 유해 인수를 거부해 오늘날까지도 그가 뤼순 인근에 묻혀있다고 추정만 할 뿐이다.

민족주의 역사학자 박은식이 저술한 한국통사는 안 의사가 나이 겨우 32세, 이립을 갓 넘긴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은 다음과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는 대한 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 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

1910년 안중근 의사 공판 당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관련 자료. 사진=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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