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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표준=일본해’ 공식 깨진다…韓日 외교전 제2라운드

IHO, 한일 갈등에 S-23 아닌 새 표준 도입
‘일본해’ 대신 숫자로…日 ‘단독표기’ 근거 약해져
‘동해 병기’ 23년만에 외교전 성과
日 “우리뜻 관철” vs 韓 “일본해 지위 격하”
한일 신경전 2라운드 돌입…진검승부 시작
  • 등록 2020-11-18 오전 11:00:00

    수정 2020-11-19 오전 11:00:04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1929년부터 90여년간 이어진 ‘국제표준=일본해(Sea of Japan)’라는 공식이 깨진다. 국제수로기구(IHO)가 바다 이름을 지명이 아닌 식별 번호로 표기하는 방식의 새로운 국제표준 해도(海圖)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이를 근거로 ‘일본해’ 단독 표기를 주장해온 일본의 논리가 크게 힘을 잃게 됐다.

외교가에서는 우리 정부가 애초에 목표했던 동해 병기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7년 한국이 IHO에 ‘일본해 단독 표기’를 처음 문제 삼은 이후 23년만의 결실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본 정부는 기존 종이 해도에 ‘일본해’ 표기가 유지된다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 표기를 둘러싼 한일 간 신경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국제표준 해도집에 ‘일본해’ 대신 숫자로 표기

동해와 일본해 병행표기는 우리 정부의 숙원이었다. 외교부는 1997년부터 동해 병기를 위해 전방위적인 외교전을 펼쳐왔다.

문제의 시작은 1929년이다. IHO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전 세계 해양과 바다의 지명 및 경계를 정하는 해양지명의 국제표준 지침서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초판을 발행하며 대한민국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했다. 1937년 2판, 1953년 3판에도 일본해 단독 표기가 이어져 현재까지 지속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동해’, 북한은 ‘조선동해’, 일본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종 우리 정부의 일부 기관 및 기업까지도 ‘일본해’ 표기 해도를 모르고 차용하는 일이 있어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엄중 경고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도 이를 근거로 동해의 명칭이 ‘일본해’라는 주장을 고집해 왔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는 1997년부터 지속적으로 ‘동해’ 병기를 주장해 왔으나 일본의 반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7년 4월 열린 IHO 총회를 계기로 북한, 일본과 이와 관련한 비공식 협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당사국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IHO 사무총장이 지명 대신 번호로 바다 명칭을 표기하는 방식을 역으로 제안, 이번 총회에서 회원국 합의에 이른 것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특정 바다 이름 대신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하는 디지털 해도인 S-130을 새로 제작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일종의 절충안이다. 기존 S-23 해도는 ‘표준’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출판물’로서만 남게 된다.

반크 ‘동해는 대한민국’ 사이트(사진=웹페이지 캡처/연합뉴스).


디지털 해도 ‘일본해’ 삭제…한일 외교전 성과

일본 정부가 ‘일본해’ 단독 표기를 강력하게 주장해온 점을 감안하면 IHO의 이번 결정은 정부가 각국에 펼쳐 온 설득 작업이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동해’를 공동 병기하려 했던 목표는 못 이뤘지만 표기법을 바꿔 일본해 단독 표기를 막은 것이다.

전 세계에서 쓰이는 해도의 동해 병기율은 2002년 2.8%에 그쳤으나 올해 기준 41%까지 높아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IHO 합의로 국제무대에서 우리 정부의 동해 홍보전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 측 관계자는 “그동안 일본해 단독 표기를 표준으로 설정해 놓은 S-23의 존재에 한일 간 명칭 싸움은 일본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며 “이번 IHO의 S-130 도입 결정으로 일단 양측이 대등하게 겨룰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꽉 막힌 일본은 난적이었다”며 “영국과 프랑스가 양국 간 해협을 영국해협과 라망슈로 병기한 융통성만 일본이 보였어도 한일 양국이 이름에 목숨을 거는 외교력 낭비는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그는 “동해 명칭은 광개토대왕릉비(414), 성덕대왕 신종(771), 삼국사기(1145) 등 여러 고고학적 유산과 기록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고도 지적했다. 실제 외교부는 2017년 ‘동해’가 ‘일본해’보다 더 역사가 오래된 지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5분 길이의 국문과 영문의 동영상을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올린 적이 있다.

삼국사기의 동해 표기(사진=외교부 동해 동영상 캡쳐).


한일 표기 논쟁 종식 아냐…외교전 제2라운드

이번 합의에도 동해·일본해 표기 논쟁이 완전히 종식되는 건 결코 아니다. 세계 각국 지도에 ‘동해’가 병기되느냐는 다른 문제여서 앞으로 이를 둘러싼 한일 간 제2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양상이다.

동해 표기 확산의 큰 걸림돌이 제거된 것은 맞지만, IHO는 표준을 제시할 뿐 이를 활용해 해도를 만드는 것은 각국 정부나 출판사의 몫이다. 정부는 민간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조해 구글과 같은 외국계 대기업, 민간 지도업체, 외국 정부 등을 상대로 ‘동해’ 병기를 설득하는 작업을 더욱 가속한다는 방침이다. 온라인에서 동해가 어떻게 표기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일본도 ‘일본해’ 단독 표기 사수를 위해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IHO 총회 결과를 놓고도 한일 양국은 서로에 유리한 내용을 부각하며 맞섰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이날 회견에서 “종이에는 ‘일본해’가 남는다”면서 “우리나라의 주장이 제대로 통했다”고 말했다. S-23이 출판물로 남겨지는 부분만 아전인수격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는 곧장 일본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IHO) 사무총장 보고서를 통해서 S-23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역사적 변천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출판물로만 공개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S-23이 더이상 유효한 표준이 아니라는 점을 국제수로기구가 공식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일본해 명칭이 표준으로서의 지위가 격하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S-130 해도 제작까지는 2~3년가량 소요될 전망이어서 S-23의 표준 지위를 둔 한일 간 공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바다의 어떤 기준을 적용해 숫자를 붙일 것인지에 대한 회원국 간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로선 S-130의 도입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다. 외교부는 “신표준인 S130 개발에 적극 참여해서 동해 표기 확산의 기반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7일 1면 톱기사(사진)로 국제수로기구(IHO)가 해도집에 동해가 아닌 일본해를 단독 표기하는 지침을 계속 유지하기로 잠정 승인했다고 보도했다(사진=요미우리신문 홈페이지 캡쳐/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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