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은 피하고 SPC는 덜미…공정위 총수 고발 딜레마

미래에셋과 SPC 엇갈린 제재
총수 지시·관여 증거 핵심이지만…
자산5조 미만 기업 과잉제재 논란
형벌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 등록 2020-08-10 오전 11:00:00

    수정 2020-08-11 오전 11:18:23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전원회의를 열고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공정위 제공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고발 안 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하고, 고발하면 과잉 제재라고 목소리 높이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한 간부는 최근 기자와 만나 하소연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제재 수위를 결정했는데 여론의 반응은 늘 극과 극이라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는 “뭘 해도 욕을 먹다보니 직원들이 소신을 갖고 일할 맛이 안난다고 한다”며 공정위 내부 직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해도, 안해도 욕먹는 대기업 총수 고발 문제로 공정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총수 지시·관여 증거 확보에 따라 엇갈린 고발

그가 언급한 사건은 최근 공정위가 제재를 내린 미래에셋의 일감몰아주기와 SPC의 부당지원 제재 건이다. 공정위는 검찰 고발을 결정할 때 법위반의 중대성 및 고의성 여부 등을 따진다.

미래에셋의 경우 계열사들이 박현주 회장 총수 일가 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에 일감을 몰아준 사건이다. 그룹차원에서 11개 계열사들이 미래에셋컨설팅이 운영하는 골프장, 호텔을 이용하도록 강제했고, 결국 경영난을 겪었던 미래에셋컨설팅의 적자폭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미래에셋컨설팅은 살아남지 못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박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박 회장이 사장단 회의 등을 통해 계열사들이 일감몰아주기에 나서라고 직접 지시를 내리거나 관여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서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애초부터 증거가 부족해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제재를 내리기가 쉽지 않은 사건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법 위반에 대한 고의성 여부를 공정위가 어느 정도 입증하지 않는다면 검찰이 기소할 확률은 크게 낮아진다.

반면 SPC의 부당지원 건은 달랐다. 계열사가 생산한 밀가루·액란 등 빵 원재료를 총수일가 회사인 ‘삼립’을 통해 거래하도록 해 총수일가에 이익을 몰아준 행위다. 흔히 말해 총수일가 회사가 ‘통행세’를 받은 혐의다. 통행세란 일반적인 거래 과정 중간에 총수일가 소유 회사를 넣어 이들에게 지원하는 부당 이득을 말한다.

공정위는 법인 외에 허영인 SPC, 조상호 전 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 등 경영진까지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했다. 허 회장이 주간경영회의를 통해 △통행세 발각을 피하기 위해 삼립의 표면적 역할을 만들 것 △삼립이 계열사와 비계열사에 판매하는 밀가루 단가비교가 어렵도록 내·외부 판매제품을 의도적으로 차별할 것 등 공정위 조사를 피하기 위한 방안을 보고받고 의사결정을 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두 사건의 차이는 총수 지시 관여에 대한 증거 유무였다”며 “공정위가 자의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형사처벌의 조건을 충족했는지 여부를 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의성 여부만 따진다면 공정위 처벌은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경제력 집중 우려 적어도 형사처벌?

여기까지만 보면 공정위가 내린 결정엔 아무런 흠결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정위가 다시 한번 고민해야할 부분이 있다. 형사처벌은 ‘보충성 원칙’을 대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행정제재, 민사적 수단으로도 피해구제나 재발방지가 어려울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형사처벌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만큼 제한적으로, 최소한으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정위가 재벌규제를 하는 이유는 자산 쏠림현상이 큰 특정 대기업이 경제력을 남용할 경우 전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혁신을 통해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편법을 동원해 자녀에 승계를 한다든지, 다른 사업자의 시장진입을 막고 퇴출시키는 행위 등은 시장실패인 만큼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공정위가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집중적으로 감시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잣대를 비춰볼 때 자산 5조에 못 미치는 SPC에 대한 고발 결정이 과연 합당했는지 달리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더구나 상위 대기업과 달리 중견 이하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도 사실이다. 상위 대기업의 경우 법무팀을 통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CP)를 가동하고, 민감한 자료는 남기지 않거나 일정기간 지나면 자동 폐기한다. 반면 중견기업들은 법무팀조차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곳도 있어 상대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할 여력이 없다. 결국 공정위의 칼끝이 ‘약한 고리’에만 향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형벌은 도화지에서 구겨진 부분을 잘라버리는 것이라면, 시정명령·과징금 등 행정제재는 구겨진 도화지를 다시 펴는 작업에 해당한다. ‘공정한 경쟁 질서 회복’이 공정위 존재 이유라면 형사처벌의 원칙을 고려해 검찰 고발은 좀 더 신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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