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新상류층의 닫혀진 방주

돈과 한숨 빨아들이는 블랙홀
"황해문화" 봄호 "강남 현상" 분석
  • 등록 2004-02-16 오후 7:47:54

    수정 2004-02-16 오후 7:47:54

[조선일보 제공] ‘대전 살러 간다’는 말을 아시는지. 수도 이전을 기대해서 대전(大田)으로 간다는 말이 아니다. 자녀들 학원 보내기 위해 집값이 천정부지인 ‘ 대치동에 전세 살러 간다’는 말이 21세기 초의 한국인들이 서울 강남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대변한다. 존재 자체가 계층과 문화를 가르는 지표가 되는 곳, 열몇 평 아파트라도 얻어 자식 학교 보내고는 싶지만 갈수록 난망(難望)인 곳, ‘강남(江南)’. 그런 강남이 ‘비정상적 투기와 교육열을 통해 자체완결적인 내부 순환체계를 갖춘 계급 재생산의 폐쇄회로’를 갖췄다는 ‘강남 계급’론이 대두됐다. 이에 따른 논란도 예상된다. 곧 출간될 계간 사상지 ‘황해문화’ 봄호는 특집 ‘강남 현상’을 통해 30여년 전 개발 독재 시대 ‘조국 근대화’의 신생아였던 강남이 이제 하나의 ‘계급적 연대’를 형성하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내희 중앙대 영문과 교수는 특집 중 ‘강남의 계급과 문화’에서 “엄밀한 ‘계급’ 개념과 달리 유동적이지만 실존하는 공간의 공유를 통해 일정한 공통 이익을 취하는 ‘다양한 계급들의 연합’인 ‘강남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최근 생겨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적,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하는 일부 주상복합 아파트에선 오래전 엥겔스가 지적했던 ‘지배계급 연합의 분리와 차별화 전략’마저 드러나고 있다”고 파악한다. 강 교수는 “이런 ‘귀족타운’의 형성은 우리 사회에 ‘20대80’의 구체적 양상이 등장했음을 의미하며, ‘계급간 적대’를 심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강남이 낳는 ‘계급에 따른 공간적 분리’는 “하이힐에 장식성 강한 강북, 단화에 미니멀 스타일의 강남”과 같은 패션의 차이 같은 데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새로운 인구가 유입하고 빠져나가는 도시에서 특정 지역에 거주·생활하는 인구를 ‘계급’ 또는 ‘계급연합’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후속 논의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신상류층의 방주로서의 강남’을 쓴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강남 개발이 30여년 전 군부 세력이 주체가 돼 진행한 일종의 ‘근대화 프로젝트’였다고 분석한다. ‘말죽거리 신화’라는 부동산 붐이 새로운 유형의 지배세력과 이들이 향유하는 부(富)·권력을 강남이라는 공간에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강남이 이 같은 공간적 특성을 지속·확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투기적 가치를 창출하는 자기증식적 부동산 가격 8학군과 고액 사교육기관을 통해 유지되며 부모의 지위를 계승할 수 있게 하는 ‘교육특구’ 강남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사회적인 결속이 오늘날의 ‘강남’을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다고 조 교수는 지적한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강남은 ‘새로운 상류층의 닫혀진 방주(方舟)’가 돼 역사의 파도를 헤쳐간다는 것이다. 강남이 그렇다고 ‘폐쇄된 성(城)’일 수만은 없다. 한국인들에게 강남은 그저 강 건너 ‘남의 동네’가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곳에 진입해야 하는 ‘기회의 땅’이다. ‘내 아이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를 쓴 송도영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한 강북 주민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과 그 댓글들을 열거하며, 강남으로 들어가 동화되기까지 숱한 계급과 문화의 장벽들이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정작 ‘그곳’의 사람들은 또다시 조기유학이나 원정출산을 떠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한맺힌 지향점의 한가운데가 실체 없이 텅 비어 있는 셈이다. 송 교수는 “아이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강남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급이동의 꿈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강남은 무슨 부동산 정책이 나오건 여전히 사람들의 돈과 한숨과 노력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로 남을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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