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양복 맞춘 故 송해처럼”…‘웰다잉’ 준비하는 어르신들[르포]

확산하는 ‘웰다잉’ 문화수업, 현장 보니
70,80대 노인들 “숙제 끝낸 것처럼 홀가분”
“죽음 언급, 여전히 꺼려…존엄사, 인프라도 부족”
  • 등록 2022-06-15 오후 4:18:04

    수정 2022-06-16 오후 9:48:34

[이데일리 이용성 김윤정 기자] “송해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양복을 맞춰달라고 했잖아요. 준비를 다하시고 좋은 데로 잘 가셨을 거에요. 내 삶도 송해 선생님처럼 마지막까지 활동 열심히 하고, 죽음을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의 강남노인종합복지관. ‘웰다잉(well-dying)’ 수업을 듣고 있던 10명의 노인은 “잘 죽겠습니다”라는 특별한 인사로 수업을 시작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70, 80대 노인들이 대부분 자리를 메웠다. 이들은 머지않아 다가올 ‘죽음’을 서슴없이 얘기하며 심지어 웃기도 했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대목에선 수능 앞둔 수험생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노트에 꼼꼼하게 필기했다. 강의 자료를 더 잘 보기 위해 돋보기안경을 끼거나 강의 내용을 한 장면 한 장면 찍어 휴대전화에 담아두는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웰다잉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사진=이용성 기자)
‘웰다잉’ 수업 듣는 노인들…“유종의 미”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이른바 ‘웰다잉’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 노인을 상대로 진행하는 웰다잉 수업은 열릴 때마다 만석이 된다. 강남 노인종합복지센터 관계자는 “5년째 웰다잉 교육을 진행 중”이라며 “정원이 15~20명인데 매번 지원자가 넘쳐 추첨을 통해 뽑는 등 갈수록 웰다잉 교육을 찾는 어르신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업에 참여한 노인들은 웰다잉을 ‘유종의 미’라는 표현으로 바꿔 불렀다. 안영득(82)씨는 “여든이 넘었고 솔직히 웰다잉인지 무엇인지 몰랐다”며 “살아보니 아쉬운 후회와 반성이 남는데 남은 날을 잘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신종철(70)씨도 “항상 청년 같은 마음으로 살았는데 불의의 사고로 다치고 난 후 삶을 좀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웰다잉 수업을 듣고 삶을 되짚어보니 숙제가 끝난 것처럼 홀가분하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살면서 마무리 짓겠다”고 다짐했다.

문영자(83)씨는 “수업을 듣고 삶을 정리하면서 삶을 둘러싼 여러 집착을 끊을 수 있어서 좋았다”며 “언제라도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매 순간 굉장히 즐기면서 살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송해 선생님도 준비를 다하시고 떠났는데 나도 송해 선생님같이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죽음’ 입에 올리길 꺼리는 문화, 바뀌어야”

‘존엄한 죽음’에 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이들도 여전히 적지 않다. 강원남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죽음을 얘기하는 걸 불편해하고 꺼리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며 “경로당에서 웰다잉 수업을 하다 쫓겨난 적도 있고, 자제분이 ‘왜 죽는 것을 얘기하느냐며’ 민원을 넣은 적도 많다”고 토로했다. 강 소장은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함께 잘 죽는 것에 대한 준비는 중요하다”며 “죽음에 대해 대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죽음을 맞고 싶어하는 이들을 도울 사회적 인프라도 부족한 형국이다. 한해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8만 명이 넘지만,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은 올해 5월 기준 전국에 1478개에 불과하다. 국립암센터 중앙호스피스센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호스피스사업 대상질환 사망자 대비 호스피스 이용률은 21.3%에 그친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는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 중인데도 이에 대한 인식이나 대비가 너무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어르신들이 웰다잉에 관한 정보와 방법을 접할 수 있도록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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