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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천년 신라의 왕궁이었던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에서 관청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건물터를 발견했다. 또한 토제벼루 50여점이 대규모로 출토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30일 경주 월성 발굴 현장을 언론과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주 월성은 제5대 파사왕 22년(101년) 축성을 시작해 935년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할 때까지 궁성으로 쓰였다.
심영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20만7천㎡(6만2675평) 면적의 월성을 A∼D지구로 나눠 발굴 중이고 현재는 중앙의 C지구와 A지구의 성벽, 문지를 조사하고 있다”며 “최근 발굴로 중앙의 C지구에서 담으로 둘러싸인 동서 51m, 남북 50.7m, 면적 2585㎡(781평)인 정사각형 부지 안팎에 있는 건물지 14곳과 흙으로 만든 토제벼루 50여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발굴 결과를 토대로 C지구 건물지들이 본래 정면 16칸, 측면 2칸 규모의 대형 건물을 포함해 건물 6동만 있었지만 후대에 동쪽과 서쪽 담을 허물고 건물 8동을 증축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과 담의 건축 시기는 인화문(도장무늬) 토기와 국화형 연화문 수막새 등 출토 유물을 통해 8세기 중반 이후로 보고 있다.
특히 월성 주변에 있는 동궁과 월지, 분황사에서 나온 토제벼루보다 월성 C지구에서 나온 토제벼루의 양이 훨씬 많다는 점으로 미뤄 이번에 발굴된 건물지군이 문서를 작성하는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토제벼루와 더불어‘정도’(井桃), ‘전인’(典人), ‘본’(本), ‘동궁’(東宮) 등의 글자가 새겨진 명문 기와와 암막새 등 기와류, 다량의 토기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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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경주 월성의 발굴 성과에 따라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발굴 현장을 공개하고 발굴 문화재에 대한 설명과 홍보를 이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