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불청객' 초파리도 실연하면 ○○한다...인간과 얼마나 닮았나?

美 베일러의대 초파리 유전학자 목정완 박사 자문
수컷 초파리, 구애 위해 춤·노래에 씨름까지…"소유욕 강해"
"최대 1km 떨어진 음식 냄새 알아채...과일 마니아"
"교배 실패 시 알코올 섭취량 증가"...인간과 유전자 60% 공유
  • 등록 2023-06-01 오후 3:47:33

    수정 2023-06-01 오후 3:47:33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여름철 모기만큼이나 성가신 불청객인 초파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실내외에서 시큼한 음식물 냄새를 풍기면 어느샌가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귀찮게 하는 초파리지만 그들은 과학자들에겐 아주 반가운 존재다. 그도 그럴 것이 초파리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춤을 추고 씨름을 하며, 실연하면 술을 찾기까지 하는 등 인간의 모습과 꽤나 닮았기 때문이다.
초파리 이미지=픽사베이.
목정완 박사, 수백 세대 초파리 키워 낸 ‘초파리 대부’...“초파리는 로맨티스트”

미국 휴스턴의 베일러대학교(Baylor University) 의학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초파리 유전학자 목정완 박사는 1일 본지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초파리는 소유욕이 강한 동물”이라고 강조했다. 목 박사는 우리나라에 몇 명 안 되는 초파리 유전학자로 지난 2010년부터 수백 세대의 초파리들을 키워 냈으며 현재까지도 초파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초파리가 소유욕이 강하다니 도대체 어떤 점에서 그럴까. 목 박사는 “수컷 초파리는 맘에 드는 암컷이 있으면 날아가 그 앞에서 갖은 구애 활동을 펼친다”며 “날개를 일정 각도로 꺾거나, 날개를 떠는 행동으로 파동을 일으켜 소리를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으로 치자면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것으로 초파리야말로 숨겨진 로맨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렇게 사랑 앞에선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는 초파리들에게 경쟁 상황이 닥친다면 그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목 박사는 “암컷끼리는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수컷이 여럿이고 암컷이 하나일 때 수컷들은 그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며 “특이한 것은 날아다니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땅에 내려앉아 서로 앞발을 들어 부딪치며 싸운다. 심지어 감정이 격화되면 상대의 몸을 뒤집어 버리기까지 한다. 인간으로 치면 씨름을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초파리는 어떻게 우리집의 음식물 쓰레기를 귀신 같이 알아차리고 금세 나타날까. 그들의 뛰어난 후각 때문이다. 그들은 최대 1km 떨어진 곳의 음식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그들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은 시큼하고 달달한 향을 가진 과일이다. 목 박사는 “고기나 과일 등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놓고 실험을 진행하면 초파리들이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과일”이라고 말했다.

실연하면 만취하는 초파리...교배 성공 시 알코올 섭취량 다시 줄어

초파리는 실연을 하면 음주량이 증가하기도 한다. 사랑을 잃은 아픔을 술로 달래는 모습이 인간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수컷 초파리의 적극적 구애 행동 후에 암컷은 그 구애 행동을 평가해 교배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미 교배를 경험한 암컷 초파리들은 수컷 초파리들이 아무리 구애 행동에 적극적이라도 교배에 잘 응하지 않는다. 유전학자들은 초파리의 이 같은 행동 특성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첫 번째 투명 유리 상자에는 모두 교배 경험이 없는 암컷 초파리와 수컷 초파리를 함께 넣어 주고, 두 번째 상자엔 교배를 한 암컷 초파리와 교배한 적 없는 수컷 초파리를 넣어 줘 이를 비교했다.

첫 번째 상자에서는 수컷의 구애 행동에 이어 암수 교배가 이뤄진다. 그러나 두 번째 상자에선 수컷 초파리의 구애 행동에도 불구하고 암컷 초파리가 이를 무시하면서 수컷 초파리는 실연을 경험하게 된다. 이 경우 실연 당한 수컷 초파리가 일반 밥과 알코올(약 15% 농도)을 섞은 밥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실험한 결과 알코올이 들어간 밥을 선택하는 비율이 약 30%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유전학자들이 실연 당한 초파리들을 다시 미교배 초파리들과 함께 둬 교배 성공을 유도하면 알코올 섭취량이 다시 급격히 줄어드는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자연 상태에서도 수컷 초파리들은 실연을 당한 경우 발효된 과일 등에서 알코올을 섭취하는 경우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파리들이 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가 갖고 있는 신경펩타이드 Y(NPY)와 비슷한 물질인 신경펩타이드 F(NPF)라는 단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배에 성공한 수컷 초파리들의 뇌에는 NPF의 양이 많은데 비해 실패한 수컷들의 뇌에는 NPF의 양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바로 이 NPF의 양이 줄어들면 알코올을 섭취하려는 습성이 커지게 된다. 교배에 실패해 NPF 양이 줄어든 수컷 초파리들이 알코올을 섭취할 경우 NPF의 양은 회복된다. 술이 짝짓기 실패에 대한 일종의 보상 물질인 셈이다.

인간과 유전자 60~70% 공유하는 초파리...인간 질병 연구에 도움

이 같은 현상은 사람의 경우 실연 뿐만 아니라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는데, 뇌의 NPY 양이 적어진 상태에서 약물이 체내로 들어가면 NPY는 다시 증가한다. 초파리를 약물 중독 치료 연구에까지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실제 초파리는 유전자를 인간과 상당 부분 공유한다. 목 박사는 “초파리의 유전자는 약 1만5000개인데 이 중 60%가 인간과 겹치고, 질병 관련 유전자는 약 70% 같다”며 “초파리가 인간의 질병이나 행동 연구 등에 도움이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령 초파리의 비이성적 소유욕이 어떤 신경 회로를 거쳐 발현되는지를 알 수 있다면 그와 관련한 인간의 신경 회로 연구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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