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in 심보배 기자] 철쭉꽃이 핀 산성은 처음 보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공주 공산성. 내 생애 처음으로 백제 산성을 들어가 본다. 입구부터 활짝 핀 철쭉꽃은 예쁜 한복 입은 옛 여인의 춤사위처럼 봄바람에 하늘거린다. 살포시 내려앉은 꽃은 나비도 부르고, 사람도 부른다. 공산성 금서루 앞의 풍경이다. 옛 성안으로 또 다른 나를 만나러 들어간다.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이다. 당시 도읍지였던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성으로 웅진성으로 불리다, 고려 시대 이후 공산성이 된다. 이곳은 사비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고, 멸망 때까지 백제와 함께한 곳이다.
낭떠러지 절벽 옆을 사푼사푼 걷는 기분, 참으로 좋다. 나무 사잇길 좁은 외길을 따라 걷는다. 인조의 시름을 달래주었던 두 그루 큰 나무, 정3품의 벼슬을 내리고, 금띠를 걸어주면서 기쁨을 나누었던 곳에 쌍수정 정자가 있다. 철쭉꽃과 홍단풍은 정자를 오르는 이의 발길을 잡는다. 오래된 고목은 가지가 부러져 뭉텅한 상처가 나 있지만 그 기품은 가히 따라가기 어렵다.
진남루를 향하는 길, 연둣빛 나무와 눈을 맞추고 체온을 전한다. 너는 알까? 사람의 체온이 어떤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무 기둥은 부모를 닮은 듯 단단하고 거칠었다. 가지는 굵기에 따라 자식의 나이를 나타내듯 굵기와 길이도 다양하다. 새싹처럼 여린 가지도 있다. 가지를 잡아보니 어린아이 손을 잡은 듯 매끈하고 부드럽다. 잠시 이상한 생각을 해본다. “한 나무에 대가족 모두가 함께 생활하는 거겠지? 비바람도, 눈도, 가뭄도 다 이겨내며 지금까지 이 자리에 있겠지. 건강한 장수 가족이네” 혼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영은사로 향한다. 조선 세조 4년에 세워진 사찰이다. 규모가 작으나 공산성과 역사를 함께한 의미있는 곳이다. 대웅전은 북향으로 금강을 향하고, 내부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조용한 사찰은 나그네의 심신을 달래기엔 부족함이 없다.
사찰 앞에는 금강 변 우물인 연지와 만하루가 있다. 좌측으로 경사진 성곽을 따라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들이 줄지어 내려온다. 인솔하는 교사의 목청은 높아졌지만, 아이들은 봄 잎새처럼 싱그럽다. 오르막길을 따라 정상부근에 석빙고가 있다. 바로 공산성의 얼음창고다. 한겨울 맑은 금강물을 얼려 석빙고에 저장해 두었다, 더운 여름이면 꺼내 썼다고 한다. 나에게는 내리막길,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은 오르막이 되는 길,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곡선으로 이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어르신이 힘겨운 오르막을 걸어온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이 오르막 뒤에는 내리막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나도 그 길을 따라 무수히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날 테니까.
공북루를 지나 다시 계단이 이어진다. 세어보니 100개가 훌쩍 넘는다. 공북루에서 바라본 풍경이금강과 공주 시내를 “나 여기있소” 하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공산성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나는 깨달았다. 금서루를 들어서는 순간,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대가족 나무를 만나고, 삶이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 그 삶은 곡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공산성에 갈 때는 혼자 또는 두 명이 좋다. 공산성과 삶의 둘레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먹거리 정보
맛집 1 - 전통 공주 국밥집 2대째 이어가는 향토음식점 새이학가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국밥으로 맛은 인기만큼 구수하고 담백하다.
공산성에서 도보로 2분거리에 있는 음식점이다. 넓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하고 공산성 둘러보기에도 좋다.
맛집 2 - 공산성 금서루 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식당 고마나루돌쌈밥
맛집 카페 - 고마커피는 최근 오픈한 카페다. 새이학 가든 바로 옆에 있는 카페라 찾기도 쉽다. 내부 인테리어도 세련된 곳이다. 커피 맛도 좋고, 빵과 케익종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