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트라우마 불러와”…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개인정보법 사각지대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보이는 숏폼…“트라우마에 더 취약”
트라우마 부르는 SNS 영상…한국인터넷진흥원 “벌써 70건 삭제”
개보법…“휴대폰으로 찍은 건 관련 조항 없어”
  • 등록 2022-11-04 오후 7:17:14

    수정 2022-11-04 오후 7:17:14

[이데일리 염정인 인턴 기자] “참사 현장이 자꾸 제 유튜브에 떠요”

사건 직후 유튜브에서 ‘이태원 참사’를 1~2번 검색한 게 전부라는 대학생 J씨(25)는 당분간 유튜브 쇼츠를 아예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J씨는 “쇼츠는 화면 스크롤을 내리면서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영상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평소 자주 보던 채널의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이태원 참사 영상을 보게 되면 숨이 가빠진다”고 전했다. J씨는 “모자이크 처리는 당연히 없고 CPR을 하는 모습 등 적나라한 영상들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스냅타임이 ‘숏폼’의 위험한 확산을 들여다봤다.

31일 오전 9시경 이태원역 인근의 추모 공간의 모습이다. (사진=염정인 인턴 기자)


실제 기자가 검색기록이 남지 않는 구글 ‘시크릿모드’로 유튜브 쇼츠 약 200건을 확인해본 결과, 25개의 영상이 이태원 참사 현장을 모자이크 없이 전하고 있었다. 그중 11건은 △사상자가 노출되는 장면 △심폐소생술 하는 장면 △사고 직전 군중이 한쪽으로 쏠리는 장면 등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선정적인 영상이었다. 이는 KBS 보도본부가 지난달 31일 밝힌 ‘사용하지 않기로 한 장면’에 해당한다.

3일 이데일리 스냅타임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사고 현장 영상이 미디어를 통해 여과 없이 퍼지고 있다”며 “시민들의 간접 외상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숏폼 콘텐츠인 '쇼츠'를 지원하는 유튜브


대표적인 숏폼 콘텐츠 플랫폼인 틱톡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보이는 숏폼트라우마에 더 취약

백종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학회장은 “알고리즘에 의한 숏폼 영상은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영상을 보게 한다”며 “현재 정신건강상담전화에 영상을 보고 고통을 느낀 분들이 속속 접수되고 있는 실정”이라 밝혔다.

이정현 국가트라우마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트라우마는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경험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며 “요즘은 충격적인 미디어에 불시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라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덜 자극적인 영상이더라도 충분히 심리적 충격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충격이 간접적인 트라우마 경험이 되면서 영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등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외상후스트레스(PTSD) 장애 진단기준이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무렵으로, 당시 현장 사진은 흑백 텔레비전과 신문에 실린 사진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날엔 고화질 동영상 등 생동감 있는 전달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져 그 충격이 더 크다.

유성은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는 시기인 재난 초기와 급성기 때는 무분별한 영상 배포와 시청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라우마 부르는 SNS 영상한국인터넷진흥원 벌써 70건 삭제

이태원 참사 이후 온라인상에서 자극적인 영상 배포 문제가 심각해지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나섰다. 11월 한 달간 온라인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적인 콘텐츠를 차단?삭제하겠다고 지난 1일 밝혔다.

KISA 관계자(관계자)는 이데일리 스냅타임과의 통화에서 지난 3일 오후 2시 기준 총 300여 건의 개인정보 노출 등 침해 게시물을 탐지했다고 밝혔다. 이어 약 70여 건 정도의 게시물 삭제를 완료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현재 12개 주요 사업자 핫라인 외에도 포괄적인 온라인 모니터링을 통해 위험 영상을 삭제하고 있지만 관련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12개 주요 사업자 핫라인에는 △메타 △네이버 △카카오 △트위터 △데일리모션 △VK △타오바오(알리바이) △텐센트 △핀터레스트 △MS(Bing) △SK컴즈(네이트)이 포함돼 있다.

관계자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CCTV와 같은 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에 대한 규정은 있는데, 스마크폰이나 블랙박스과 같은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에 대한 조항은 따로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참사의 경우 핸드폰으로 촬영된 것이 대부분”이라며 “사업자들에게 삭제를 요청할 때도 마땅한 법적 근거를 대기 어려운 상황”이라 전했다. 현재 KISA는 이번 참사의 심각한 피해를 강조하며 각 사업자에게 협조를 요청 중인 상황이다.

또한 KISA는 △피해자 얼굴이 모자이크 없이 노출 △특정인을 지속 촬영 △영상물과 함께 그 피해자의 신상 정보가 노출 △자극적인 피해 상황이 노출된 경우 삭제 조치를 하고 있으나, 다수의 인파가 촬영된 경우엔 규제할 마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밀집된 군중이 모여있는 덜 자극적인 영상물도 충분히 트라우마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KISA 관계자는 “개인이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영상을 발견했다면 해당 플랫폼에 신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 설명했다.

“개인정보법, 휴대폰으로 찍은 건 관련 조항 없어

송혜미 변호사는 “현행법상 핸드폰으로 촬영해 유튜브 등에 올리는 영상들이 위법하다고 하긴 어렵다”며 “현재로선 올린 사람의 동의를 받아 지워야 하는데 하나하나 처리하기엔 건수가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나 엄중한 사태에 대해선 핸드폰으로 촬영된 영상물 중 과도하게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선 법적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 덧붙였다.

한편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정의를 ‘이동형’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태원 참사’로 불안, 우울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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