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SK, LG 등 주요 대기업들이 올해 투자 계획을 예정대로 밀어붙이는 분위기다. 미국·중국 간 패권경쟁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등 잇단 난제와 복병 속에 투자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되레 공격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보다 호황.불황 사이클이 짧아진 데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돌발 상황까지 맞물린 만큼 과감하고 선제적 투자를 통해 미래 성장기반을 확보,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우리 기업들의 장기적 비전 구상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7일 재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州) 퀸크리크에 1조7000억원을 넣어 연산 11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 신규공장을 짓기로 한 기존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올해 3월 발표된 이 계획은 그러나 지난 6월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기록적인 원·달러 환율 상승 등의 여파로 투자비가 천정부지를 치솟았기 때문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전날(6일) 충북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내 약 6만㎡ 부지에 M15X 건설 공사를 내달 시작해 2025년 초 완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모두 15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위기 때 투자’라는 SK하이닉스 특유의 승부수로 해석됐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 투자 축소 분위기가 지속했던 2012년 SK하이닉스는 전년 대비 10% 이상으로 투자 규모를 늘렸고, 그 결과 같은 해 연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바 있다. 2015년 이천 M14 건설 역시 불투명한 시장 상황 속에서 이뤄졌는데, 향후 반도체 호황기를 대비해 이뤄진 이 결단으로 SK하이닉스는 2017년부터 2년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불황에 투자를 줄이고, 호황 때 늘리는 공식은 사라지는 듯하다”며 “선제적인 투자가 위기 극복과 미래 선점에 득이 될 것이라는 게 요즘 재계 안팎의 분위기”라고 했다.
경 사장은 “그간 삼성전자 투자 패턴을 보면 호황기에 투자를 좀 더 많이 하고 불황기에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도 “경기 사이클이 빨라지고 있기에 우리 페이스에 맞게 투자를 꾸준하게 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