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현실 비추는 연극, 성소수자의 삶을 바라보다

재공연 오른 연극 '와이프'
각기 다른 시대를 사는 네 커플의 이야기
공연시간 3시간, 배우들 열연 몰입도 높여
마스크 쓴 배우들, 코로나19 반영 '눈길'
  • 등록 2020-08-05 오후 2:48:11

    수정 2020-08-05 오후 2:48:11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연극 ‘와이프’의 한 장면.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연극 ‘인형의 집’에서 노라 역을 맡았던 수잔나가 대기실로 돌아와 거울을 바라본다. 흔히 연극을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수잔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거울을 보지 않는다며 연극은 죽었다고 씁쓸해 한다.

연극 ‘와이프’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역설적으로 ‘와이프’를 보고 나면 연극은 여전히 시대를 비추는 거울임을 느끼게 된다. 작품은 1959년부터 2042년까지 약 80년의 긴 시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네 커플의 이야기를 그린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이들 에피소드는 느슨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혐오와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삶이다.

1막은 1959년과 1988년의 에피소드로 각각 레즈비언 커플 수잔나-데이지, 게이 커플 에릭-아이바가 등장한다.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2020년과 2042년의 에피소드를 다룬 2막에서 보다 복잡하게 얽힌다. 특히 2020년 에피소드는 중년이 된 아이바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젊은 시절 자신의 ‘와이프’ 에릭에게 커밍아웃을 권하던 치기어린 게이는 2020년 그런 과거를 감추고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은 그리 변하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대미를 장식하는 2042년 에피소드는 1959년과 무대 구성은 물론 등장하는 배우도 똑같다. 미래의 또 다른 수잔나와 데이지의 이야기다. 수잔나는 이제 연극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데이지는 자신만은 연극을 볼 것이라며 수잔나를 응원한다. 수미쌍관을 이루는 이 독특한 구성이 긴 여운을 남긴다.

연극 ‘와이프’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와이프’는 영국 극작가 사뮤엘 아담스가 지난해 6월 무대에 올린 희곡이다. 신유청 연출이 지난해 10월 서울시극단 ‘창작플랫폼-연출가’를 통해 국내서 초연했다. 실제 동성애자인 아담스 작가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고 있음에도 주변에서 늘 언제 결혼할 것인지 묻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썼다.

공연 시간은 휴식 시간 15분을 포함해 3시간에 달한다. 대부분의 장면이 배우들이 주고 받는 대화로 이뤄져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열연이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특별한 세트 없이 단출하지만 간결한 무대 구성, 시대가 달라지며 반복되는 대사와 소품의 등장이 작은 재미를 더한다.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의 마지막 장면이 각 에피소드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인형의 집’은 여성의 주체성을 내세운 작품이다. ‘와이프’는 ‘인형의 집’을 인용하며 시대의 변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는 쉽지 않지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초연과 달라진 장면이 하나 있다. 2020년 에피소드에서 배우들은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등장한다. 코로나19가 덮친 현 상황을 반영한 변화로 다시 한 번 연극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임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한 ‘와이프’는 오는 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연극 ‘와이프’의 한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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