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불 나면"…`배터리 포비아` 확산, 대비는 사실상 전무

전기차 보유 5년새 4배 폭증…화재도 증가
아파트 전기차 충전소 83% 금속 소화기 無
금속 소화기·질식화재덮개 있어도 개수 부족
D급 소화기 기준 無…전문가 “서둘러 마련”
  • 등록 2024-07-01 오후 5:40:39

    수정 2024-07-01 오후 7:18:17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김세연 수습기자] “불이 난 전기차는 일반 소화기로 꺼지지도 않잖아요. 지하주차장 충전소 바로 위에 사는데 가끔 아찔해요.”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모(52)씨는 최근 경기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를 보고 배터리에 대한 공포감이 더 커졌다. 그는 “공장 화재 때 보면 소화기 수십대가 한꺼번에 물을 퍼부어도 안 꺼지던데 여기 소화기 몇 대로 불을 잡을 수 있겠나”라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이후 이른바 ‘배터리 포비아’가 퍼져 나가고 있다. 특히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 인근 사는 주민들은 ‘꺼지지 않는 화재’가 발생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사실상 없다시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청은 뒤늦게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더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전기차 충전소에 일반 소화기가 설치돼 있다. (사진=김세연 수습기자)
전기차 느는데…아파트 충전소 83% ‘금속 소화기’ 無

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기차 보유 대수는 54만7455대로 2020년(13만4962대)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전기차 충전소 역시 늘어나고 있다. 현재 비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35만1537개로 2020년(3만4714개)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전기차가 늘어나며 전기차 화재 사고도 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화재 사고는 72건으로 2020년(11건)보다 7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기차로 인한 화재 사고가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안전 대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데일리가 찾은 공동주택 12곳의 전기차 충전소 중 D형 금속 소화기를 갖춘 곳은 단 2곳에 그쳤다. 전기차에 들어간 리튬 배터리는 물과 직접 접촉할 경우 발열·폭발 등을 일으켜 마른 모래나 D형 금속 소화기로 불을 꺼야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동주택 충전소에는 전기차 화재에 효과가 없는 일반 분말형 소화기만 비치돼 있었다. 일반 소화기로 대응할 경우 화염이 순간적으로 꺼질 순 있지만, 화성 화재에서 볼 수 있듯 재발화할 가능성이 크다.

D형 금속 소화기가 비치된 곳도 전기차 배터리 화재에 대응하기엔 부족했다. 서울 서초구의 A아파트에는 전기차 6대를 충전할 수 있는 공간에 D형 금속 소화기가 1대뿐이었다. 조기에 배터리 온도를 낮춰 폭발을 막는 것이 전기차 화재 초기 대응의 핵심인 만큼 2대 이상의 금속 소화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1대만 비치돼 있어 신속한 대처가 힘들어 보였다.

화재 발생 초기 대응해야 할 운전자들의 전기차 화재 예방법에 대한 인지도 부족했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의 B아파트에는 전기차 화재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질식소화 덮개가 1개 비치돼 있었으나 사용법을 아는 이는 없었다. 덮개가 들어 있는 방재함에 사용법이 쓰여 있지만, 평소 관심이 없다면 이를 사용하긴 어려워 보였다. 주민 정수진(52)씨는 “전기차 화재시 대처법에 대해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안 옮겨붙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초기 대응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전기차 충전소에 D형 금속 소화기가 설치돼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높아지는 주민 불안감에도 금속 소화기 기준 없어

이같은 상황에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서울 도봉구에서 만난 윤모(48)씨는 “우리 가족은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소 바로 위에 살아서 너무 불안하다”며 “어떤 충전소에는 소화기도 없다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여모(67)씨는 “오늘 아침에도 지하철에서 배터리 화재가 났다는데 불안하다”며 “사람이 당황하면 어쩔 줄 몰라 대처도 늦을 텐데 걱정”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초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출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문제는 D급 소화기에 대한 별도의 성능 공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성능이 들쭉날쭉할 뿐만 아니라 배치를 의무화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일반화재(A급)·유류화재(B급)·전기화재(C급)·주방화재(K급)에 대한 소화기 기준은 있지만 금속화재(D급) 소화기 기준은 없다. 감사원이 2020년 해외처럼 금속 화재를 별도로 분류해 소화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졌다.

소방청은 뒤늦게 D급 소화기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이날 “산학연 전문가 자문단으로 구성된 실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리튬전지 화재에 대응하고 금속화재 소화기 기준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늦었지만 지금이라고 금속화재 소화기에 대해 기준을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며 “전기차 화재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D급 소화기 연구·개발(R&D)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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