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서 장바구니 빌리면 4000원…박스테이프 사면 1000원"

마트 자율포장대서 테이프·끈 없애…폐기물 저감 노려
소비자들, 장바구니보다 싼 테이프 사거나 가져오기도
민원이 두려운 마트 측 "사오는 것까지 어떻게 막겠나"
플라스틱 장바구니 남용도 우려…"제도 홍보 부족했다"
  • 등록 2020-01-02 오후 3:53:32

    수정 2020-01-02 오후 4:30:21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 시민이 직접 가져온 테이프로 포장을 하고 있다.(사진=최정훈 기자)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마트 포장대에서 테이프를 쓸 수 없다고 해서 하나 샀습니다. 한 번에 많이 장을 보는 편인데 장바구니나 봉투로 가져가기 어려워 어쩔 수 없었어요.”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 장을 본 사람들이 테이프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포스터가 붙은 자율포장대 앞을 서성거렸다. 이들은 박스를 접어 물건을 넣은 뒤 들어보곤 다시 빼기도 했다. 박스에서 물건이 떨어질까 걱정됐기 때문. 이날 장을 보러온 장모씨는 “집에 이미 장바구니가 있는데 깜빡하고 가져오지 못했다”며 “박스를 접어서 쓰기도 불안해 어쩔 수 없이 테이프를 사서 포장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 테이프가 사라진 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테이프를 사서 종이박스 포장에 쓰거나 심지어 집에서 테이프를 가져오기도 하는 등 제도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바구니도 무더기로 풀리면서 오히려 폐기물을 늘릴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테이프 가져오거나 사면돼”…대형마트 자율포장대 이틀 만에 꼼수

새해 첫 날인 1일부터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모든 매장에서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이 사라졌다. 수 백톤 가량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에서 연간 사용되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 등은 658t에 달한다. 상암구장(9126㎡) 857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당초 계획은 종이박스 자체를 없앨 계획이었다. 지난해 8월 대형마트 3사는 환경부와 자율협약을 맺고 매장 안에서 자율포장대와 종이박스를 모두 없애기로 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에 종이박스는 남기고, 포장용 테이프와 끈만 없애기로 바꿨다.

문제는 자율포장대에 종이박스가 남으면서 플라스틱 폐기물 저감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포장용 테이프가 쉽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특히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종이박스 대신 권장하는 장바구니를 사거나 빌리는 대신, 마트에서 테이프를 사거나 심지어 집에서 가져오기도 했다. 이마트·홈플러스 등에선 56ℓ대용량 장바구니를 3000~4000원 가량으로 대여하거나 판매하기도 하는데, 차라리 반값 수준의 테이프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는 것. 실제로 이날 몇몇 시민은 장바구니 3~4개를 이용해 포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마트에서 만난 한 김모씨는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 테이프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포장이 어려울까 봐 집에서 테이프를 챙겨왔다”고 말했다. 김씨로부터 테이프를 빌려 사용한 박지영씨도 “퇴근길에 장을 보러오는 경우도 있는데 급한 경우에는 1000원 가량 하는 테이프를 사다 써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취지지만 고객들 개인이 테이프를 챙겨 오거나 사서 쓰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며 “제도 시행을 이제 막 시작한 만큼 민원 제기도 들어올 수 있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2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플라스틱 소재의 장바구니를 판매하고 있다.(사진=최정훈 기자)


플라스틱 장바구니 남용도 우려…“제도 취지 홍보 부족”

테이프로 인해 종이박스 재활용이 어렵다면 종이테이프 친환경 소재 등을 비치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화되기 어렵다. 자율포장대를 운영하면서 테이프, 끈, 박스 등의 비용을 줄인 대형마트에서 추가 비용을 들여 종이 테이프를 비치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테이프와 끈으로 종이박스 사용이 줄어들어도 플라스틱 소재 장바구니가 오히려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이날 대형마트에서 종이박스를 이용한 시민들은 집에 이미 2~3개의 장바구니를 가지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특히 마트에서 대여·판매하는 장바구니 소재들도 대부분 플라스틱 소재라 재사용 횟수가 적으면 오히려 환경에 더 악영향이 클 수도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업계나 환경부가 제도 시행 전에 환경적으로 플라스틱 포장재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본다”며 “특히 소비자에게 무분별하게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판매하거나 대여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늘리기보다 하나의 장바구니를 오래 쓰도록 하는 방향으로 과도기를 넘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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